「오늘의 사람들」면을 담당하는 기자는 쏟아지는 각종 모임과 개인동정을 추려내느라 항상 곤혹스럽다. 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정치인 등 저명인사들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면을 만들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한보사태 이래로 움직임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태 앞에서 자숙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머리카락 보일세라」 숨죽이고 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신문의 동정면까지 얼어붙게 만든 지도급 인사들의 전전긍긍하는 자세는 신념이 결여된 「꾼」들의 초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보사건에 연루된 한 국회의원은 스스로를 「깃털」로 비하했다. 『왜 나 혼자 뒤집어 써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였다. 대부분의 연루인사들이 내심 자신이 깃털로 비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명색이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스스로를 깃털이라고 지칭하게 한 현실은 씁쓸하다. 그를 지지한 지역주민은 무엇인가. 이처럼 김 빠지고 모욕적인 자기비하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 북 이론가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북한 노동당 비서이기도 한 그의 망명동기는 아직 확연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민족적 비극을 막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는 본인의 설명이다. 「신념」 「사상」 등의 단어가 그를 통해 오랜만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체사상」이란 이데올로기를 창안하고 신봉한 그의 반생은 분명 시행착오였다. 그의 오도된 신념은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동시대를 산 수천만 동포의 삶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수식한 「신념」과 「결단」 등의 단어는 무소신한 우리 정치풍토에서 오히려 신선했다. 최소한 그는 사상가로서, 정치가로서 깊은 고뇌를 했고, 일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자신의 신념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우리 곁을 돌아보면 어떤가. 부정한 재벌에게서 덥썩덥썩 돈을 받아쓴 우리의 정치인들은 단 한번이라도 『나의 신념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깃털이었다』고 항변하기에 앞서 부정한 세력의 「공범」임을 자인하는 용기를 가졌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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