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경악… ‘위기지수’ 급상승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황장엽 망명사건과 이한영 피격사건이 발생하자 사회가 극도의 불안조짐을 보이고 있다. 잇단 대형사건이 미칠 영향을 분야별로 점검해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정치/한보정국 새 국면… 공안분위기
정국에 보수적 기류, 공안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보사태의 늪에 빠져있던 정국이 황장엽 비서 망명, 이한영 피격 사건이 터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황장엽 망명, 이한영 피격은 본질적으로 안보문제인데다 아주 미묘한 성격의 메가톤급 사건이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위기지수」는 상당히 높다. 추가 테러가능성, 수많은 고정간첩의 암약설, 북한의 황장엽 망명 저지시도 등 향후 예상되는 사태도 위협적이고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의 불안심리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남북분단의 긴장구조에서 안정론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황장엽 망명, 이한영 피격은 정국의 흐름을 강성 보수회귀로 전환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보정국에서는 민주계 중진, 김영삼 대통령의 가신이 구속되는 등 여권에 훨씬 부담되는 국면이 계속됐다. 그러나 안보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고 국민이 정국안정을 바라는 상황에서는 야당이 오로지 비리폭로 등의 공격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외형상 이한영 피격사건 등은 여당이 난국을 모면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한영 피격사건 등이 장기적으로도 여당에 유리하게만 작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황장엽비서의 망명을 원만히 매듭짓지 못하거나 남북긴장을 폭발시킬 또다른 사건이 발생한다면, 총체적 위기나 정치공황의 극단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시기적으로도 정국위기의 잠복요인은 적지않다. 대학가 개학, 춘투가 예고돼있는 3∼4월은 결코 간단히 지나치기 힘든 시기이다. 여권이 안보사건들의 「반사이익」에 자족하다가는 「봄정국」에서 통제력 상실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공황의 국면에서는 여야 득실이 무의미해지고 모두가 추락하는 처지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한보사태와 황장엽비서 망명, 이한영 피격사건 등을 치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경제/현재론 ‘미진’ 긴장악화땐 ‘강진’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황장엽씨 망명에 이은 이한영씨 피격사건에 대해 현재로선 「정치적인 사건」으로 보면서도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17일 『일회성 충격에 불과하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며 『이 사건으로 경제가 타격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해 외부에서 전쟁위험까지 거론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경제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했다.
재계는 더욱이 올들어 노동법개정안 기습처리에 따른 노동계의 파업과 뒤이은 한보부도사태로 우리 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지고 있는 점을 감안, 남북긴장관계의 진전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해외바이어들이 국내 불안을 지나치게 염려해 수입선을 변경하거나, 우리 신인도를 더욱 낮게 평가해 수출여건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우리 경제는 전혀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보사태이후 일부 은행들의 해외차입금리가 높아졌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도 주춤거리는 등 대외여건이 악화하고 있다. 1·4분기중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계획도 연기됐다. 환율급등과 원화약세가 겹치면서 일본과 수출경쟁을 벌이는 자동차 철강 등 중화학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또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1월중 산업생산증가율이 94년 2월이후 최악인 3%내외에 그치고, 올 경제성장률도 최저 5%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관계가 불안해지면 「코리안 프리미엄」으로 인한 외환차입조건 악화, 경상적자 확대 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최근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오르자 일부 대기업들이 달러사재기에 나서는 것에서 보듯, 투자마인드까지 위축시킬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경제가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결국 이한영씨 피격사건은 정부의 대응과 향후 진전과정에 따라 경제계에 미치는 파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정희경 기자>정희경>
◎사회/‘주위 두리번…’ 불안심리 확산
이한영씨가 권총테러를 당한 소식이 알려진뒤 시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의 보복위협 발언 직후 도심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테러가 현실화했다는 점에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잇따른 북한 고위층 인사의 망명과 테러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영향도 짐작하기 쉽지 않다.
회사원 권모(33·서울 성북구 돈암동)씨는 최근 북한 노동당 황장엽비서의 망명 등 일련의 사태를 보고 『뭔가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같다』는 말은 불안감의 정도를 대변한다.
박모(42·상업·여·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지난해부터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을 지경인데 최근의 사건으로 불황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불안현상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귀가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외출은 자제하는 양상까지 나타난다. 아파트주민들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탈 때 주변을 살피거나 한적한 주차장에 차 세우기가 꺼려진다는 말도 한다. 막연한 불안심리가 점차 번져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리도 확산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황비서 망명에 이은 이씨 테러사건은 대학가 주사파세력에 큰 충격으로 다가섰으며 일반 학생들의 운동권에 대한 거부 움직임도 신학기들면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려대생 김모(21)군은 『황비서 망명과 이씨 테러사건이 아직 운동권의 노선이나 역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내부적 논의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들 사건을 빌미로 사회전반에 매카시즘선풍이 휘몰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전인영(55·국민윤리) 교수는 『한보사태로 맥이 빠질대로 빠진 국민들이 최근 일련의 대북 사건으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국민들의 불안이 저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근원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충재 기자>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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