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황장엽의 망명사건과 김정일의 전동거녀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 피습사건 등 최근에 발생한 주요 공안사건을 처리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 우리는 몇가지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일반적으로 정부나, 어느 조직체이거나 간에 그의 관리능력이나 잠재력은 평상시보다는 위기시 대처능력에 따라 평가받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처리하는 정부측의 대처방식에는 문제가 많았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 정부의 대처능력에 깊은 회의감이 든다.
먼저 황장엽 망명사건의 경우를 보자. 정부는 지난 12일 황이 베이징(북경)의 우리 총영사관에 귀순했을 때 7시간여만에 이를 공식 발표했다. 현지 보고를 받고 관계기관 대책회의 끝에 나온 결론에 따랐다고는 하나 퍽 이례적으로 신속한 발표였다. 정부는 북한이 납치극이라고 생떼를 쓸 것에 대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런 우리측의 성급함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번 사건처럼 중국 정부의 협조가 절대적인 점을 감안해 보면 정부측의 설명은 왠지 공허한 기분이 든다. 신속히 「공개」해야 하는 긴박했던 상황은 이해하나 중국과의 충분한 협의로 뒷말을 남기지 말았어야 했다.
또 황이 작성한 「석명서」의 공개도 그렇다. 물론 정부는 이를 언론의 과열 경쟁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석명서의 관리책임은 분명 정부에 있다. 이 문건의 공개가 황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판단했어야 했다. 성급한 공개로 흥미는 한층 돋웠을지 모르나 결과는 황의 망명사건 처리를 장기화하게 했고 이런 와중에 이한영씨 피습사건이 터진 것이다.
미국 CIA의 황 면담보도는 더욱 어처구니없다. 정부가 즉각 이를 부인했지만 보도의 구체성으로 봐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의 기밀·정보 관리능력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는 황이 CIA에 망명을 준비중에 있는 북측 고위인사 7∼8명의 신원까지 밝힌 것으로 되어 있다. 정말 기가 막힌다. 황은 지금 우리 공관이 보호하고 있다. 한국 특파원이 베이징에서 이런 와중에 접근할 수 있는 「소식통」이 누구이겠는가.
알 권리나 정보의 공개도 사안의 안전처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 망명을 희망하는 사람의 신원이 누설된다면 이는 김정일에 대한 「제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는 툭하면 「언론이 앞서가서…」 혹은 「우리는 흘리지 않았는데」하고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만 이는 중대한 직무유기이거나 이적행위다. 대공정보의 관리책임은 어디까지나 국가에 있다.
9개의 불확실한 첩보보다는 확실한 1개의 정보를 잘 관리하는게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 더이상의 시행착오는 곤란하다. 아울러 이한영씨의 피격도 결국은 이런 무질서한 정보관리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야 한다. 범인을 끝까지 추적, 체포해서 북한의 보복위협이 엄포로 끝나도록 하는게 유사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확실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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