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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소재(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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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소재(지평선)

입력
1997.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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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희망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농담도 하고, 나라의 장래에 관해 얘기하기도 한다. 나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여기서 신부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행복하다』리마에 있는 페루 주재 일본대사 관저에 인질로 잡혀있는 환 후리오 위츠(63)라는 신부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외신이 전한 이 편지는 기관총의 위협 아래 신체적인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스스로 찾아낸 역할에 만족하는 차원높은 인생관을 보여준다. 72명의 인질과 함께 생활하는 그의 일은 그들에게 희망과 정신적 안정을 주는 일이다. 유머 감각을 잃지않는 그를 인질들은 하늘처럼 믿고 따른다.

그는 지난해 12월 일본대사 관저 파티에 갔다가 MRTA라는 무장 게릴라에 의해 인질로 잡혔다. 그의 이름은 그해 12월22일 석방된 225명 속에 포함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갈 수는 없다며 인질들 곁에 머물고 있다. 게릴라들은 그에게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그는 끝까지 남을 것이라 한다.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이기도 한 그는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동료들과 체스를 두거나 강연을 하고 있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주려는 노력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참회를 받고 있다. 20년, 30년 전에 저지른 죄를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아름다운 페루인들이다』 이 구절은 2개월이 넘도록 인질로 잡혀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강박감이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케 해준다. 적십자 국제위원회를 통해 배달되는 편지를 통해 그는 지금처럼 신부라는 자신의 신분을 강렬히 의식해 본 일이 없었다며 자신도 그들에게서 냉정함, 용기, 가족애의 힘, 페루에의 애정 등 여러가지를 배우고 있다고 썼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터져나오는 깜짝뉴스 홍수에 묻힌 아름다운 화제 한토막이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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