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럽다. 노동법 개정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듯 하더니 한보폭풍이 밀어닥쳤다. 그 와중에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이 터져나왔고 급기야 귀순자 이한영씨가 피격됐다. 『내일은 또 무슨일이…』 아침잠 깨기가 불안한 것은 위정자나 민초나 다르지 않다. 충격내성면에선 꽤나 어지간한 우리 국민들도 숨돌릴 새 없이 이어지는 파상쇼크에 기가 질렸다. 이 정도라면 또 그나마 견딜만 하겠다. 정작 국민을 헷갈리고 불안케 하는 것은 의혹과 음모의 검은 그림자들이다. 머리와 꼬리를 분간할 수 없는 정치권의 「음모론」은 누구 말마따나 궁중야화가 무색하다.여권 대선주자인 김덕룡 의원의 음모설 제기와 상도동 집사장격이었던 홍인길 의원의 깃털론 운운으로 막이 오른 정치권의 의혹드라마는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의 또다른 음모론 주장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의문이 의문을 낳고, 그 의문들이 다시 뒤엉키는 드라마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파국에 이은 대단원의 막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관절 누구나 인정하는 이 정권 최고의 핵심인사들이 음모론을 제기할 지경이라면 현 정국을 「조작」하는 주체는 누구란 말인가. 보이지 않는 음험한 검은 손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정권은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껍데기 정권」이라는 얘기 아닌가.
음모론 제기가 단순한 추정이나 추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국면전환을 위해 던진 실체없는 정치적 역공이라면, 그 또한 이 정권의 한심한 위기관리능력 수준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정치권을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해야만 정치적 면죄부를 쥘 수 있을 정도로 이 정권의 주체들은 허약하다는 말인가. 음모론 제기 당사자들은 마땅히 의혹 실체를 밝힐 책무가 있다. 그들은 다름아닌 이 정권을 지탱해온 주역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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