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적 고뇌인가 삶 위한 도피인가/숙청 가능성도 작은 변수 됐겠지만/‘민족화해’ 깊은 애정서 용기 나온듯민족통일을 위한 순수한 결단에 따른 사회주의 이론가의 망명일까. 아니면 김정일체제에 대한 회의와 권력투쟁을 피하기 위한 망명일까. 황장엽(74)은 자술서를 통해 민족문제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망명했다고 밝혔지만 망명전 작성한 편지에서는 자신에 대한 숙청움직임을 언급, 현실적인 배경을 내비쳤다.
황은 12일 자술서에서 『고민끝에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남쪽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했다』며 『내 운명은 시대의 흐름에 맡기고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려한다』고 밝혔다. 자술서는 망명이 심금을 울리는 원로 이론가의 마지막 결단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10, 13, 15일, 올 1월2일자 등 4건의 서신을 살펴보면 학자적 고뇌이외에도 권력투쟁의 희생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임을 나타내 준다. 11월 13일 황은 『당국은 5월 9일을 계기로 나의 사상이 통치체계에 맞지않는다며 공격을 개시했다』며 『자결함이 여러 모로 유리함』이라고 벼랑끝에 서있는 심정을 전했다. 자술서에서도 『나는 정치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거듭 밝혔다. 40여년간 북한 체제내에서 권력의 정점을 누렸던 황으로서 숙청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망명은 일단 축출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면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이고 애국적 결단을 평가절하하거나 도피성 망명으로 규정하는 것도 부적절한 것 같다. 숙청과 철학적결단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황은 자술서의 표현대로 「어느편에서서 한몫하려는 생각없이」 학자적 양심을 지키려다보니 필연적으로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황은 『북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으며 김일성부자를 신격화하고 있다』(1월2일)며 자신의 사상과 통치 사상의 차이를 지적했다. 김일성주의를 붉은기 철학으로 재해석중인 김정일에 대해 황이 반발하고 있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도피성망명으로만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황이 숙청되더라도 비교적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황으로서는 40여년간의 체제유지 공로, 김정일의 스승이라는 점, 지도부내 인맥·혼맥 등으로 숙청의 강도는 낮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타협보다는 원칙을 소중히 하는 황은 숙청된 김일성측근들과는 달리 이같은 절충을 포기했다.
절충을 대안으로 생각지 않았던 그는 양심을 지키기위한 수단으로 망명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정도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지만 탄압이 가혹해 인민자체 힘으로 도탄에서 벗어나기 불가능하다』(1월2일) 『공화국은 붕괴될 위험성은 없다』(자술서)라고 토로했다. 내부봉기가 불가능해 남쪽으로 가 「백의종군」하면서 마지막으로 민족에 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축출가능성이 망명을 부추겼지만 그의 결단을 이끌어낸 것은 결국 학자적 양심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망명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걸작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차라리 걸작을 부서버린 장인의 심정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이영섭 기자>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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