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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도 인사태풍 분다

입력
199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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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정지 사전통고제’ 도입 검토작업 들어가/말단직원 주특기 없으면 도태 ‘전문직군제’도『아무리 능력이 없더라도 이거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20년이상 한국은행에서 근무중인 고참과장 K모씨(45)의 볼멘 소리다. 평소 사람좋기로 정평이 난 K과장이 얼굴을 붉히며 성을 내는 이유는 뭘까. 「경쟁력 있는 중앙은행을 만든다」며 조직개편에 나선 한국은행 인사부가 올해부터 공직사회에서 최초로 ▲승진정지 사전통고제 ▲상사평가제 ▲전문직군제 등 메가톤급 인사개혁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진정지 사전통고제」란 군대의 「계급정년제」와 비슷한 것으로 승진가능성이 없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사전에 알려주는 제도다. 「계급정년제」처럼 직원을 강제로 내보낼 수는 없지만 「은행일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게 유리하다」는 조직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에 따라 K과장처럼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늦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학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은행부근 어학원에 수강신청을 하는 바람에 남대문 주변 영어학원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모학원 관계자는 『한 반 수강인원 13명중 7명이 한국은행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명철 인사부장은 『승진이 불가능한 직원에게 미리 통보하는 것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지만 조직의 유연성과 개인의 경력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며 『그동안의 인사고과, 입행동기간 승진현황 분석 등을 토대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설령 K과장이 천신만고끝에 부부장으로 승진을 한다고 해도 은행생활이 쉽지 만은 않다. 한국은행이 「승진정지 사전통고제」와 함께 「상사평가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부장은 『95년부터 인사고과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상사평가제를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상사에 대한 부하들의 평가를 인사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인사태풍은 말단직원도 비켜가지 않는다. 은행직원들은 올해부터 실시중인 「전문직군제」에 따라 저마다의 주특기(전공분야)를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는 조사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도 국제업무 등 다른 분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주특기를 살리지 못하면 「승진정지 사전통보」명단에 올라간다. 이부장은 『은행직원들의 업무를 조사 자금 국제금융 관리 기획 등 5∼6개 전문직군으로 분리, 원칙적으로 직군내에서 인사이동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에 들어와 대과없이 30년가량 지내면 일선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서로 모셔가던 한국은행 직원들. 한국의 금융정책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던 「한은맨」이 졸지에 조직내에서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밖에서는 금융개혁과 한보사태의 강풍이 몰아치지만 한국은행 안에서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인사개혁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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