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의 북한이탈은 과거의 여느 귀순과는 판이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 대내정치의 「권력투쟁」의 한 단면을 노출시킨 황장엽의 망명은 북한의 정치변동, 나아가서는 「체제변화」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황장엽의 북한 탈출은 한반도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독일과는 판이한 방향으로 치다를 수도 있다.
황장엽의 귀순 이후는 바로 북한체제 변화의 숨가쁜 정치과정이 전개될 것이다. 황장엽이나 북한을 지탱시켜온 「주체사상」이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권력투쟁에서 황이나 김정일이나 김일성의 유훈따위를 갖고서는 북한의 현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황의 망명동기는 바로 주체사상의 모순인 것이다.
황의 망명은 확실히 「구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물론 조만간 김정일 임시체제의 붕괴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 다음에는 북한체제의 유일한 기반인 「군부」가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남한이 붕괴되어 가는 북한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이상 북한 내부로부터의 변혁과 정치변동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황의 망명직후 우리가 북한의 군사위협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북한체제가 흔들릴 때에는 우리의 체제도 동요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가. 우리가 뒤쫓고 있는 클린턴행정부의 「연착륙」접근법으로는 북한체제를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중국이 지정학적이나 혹은 사회주의연대라는 이유로 북한을 지원한다해도 이미 붕괴되고 있는 북한체제를 지탱시켜 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의 연착륙도, 중국의 사회주의적 지원도 북한체제의 보장과 해결에는 미흡할 뿐아니라 남한에도 엄청난 부담, 깊은 충격을 줄 것이다. 중국 역시 체제에 깊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베를린 장벽처럼 붕괴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현실을 우리는 홀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북한에 남는 유일한 엘리트집단은 모스크바에서 훈련을 받은 군부엘리트밖에 없다. 군부엘리트가 북한의 정치변동과 나아가서 체제변동까지를 담당하게 될 단계가 임박한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혁명기지론」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조선」정책, 즉 주체를 기초로 하는 「전조선의 공산화」를 견지해왔다. 때문에 「주체」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면 군부밖에 하나의 조선정책을 「수정」할 세력은 없는 것이다. 60년 근대화를 기초로 하였던 남한에서의 박정희 쿠데타가 이제 북에서 출현할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일체제는 그 시기는 몰라도 곧 붕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한반도를 뒤흔든 대지진에 비유할 수 있는 황의 망명뒤에는 북한 군부에 의한 현실정치가 전개될 것이다. 황이 북한의 대남정책의 문서를 갖고 오지않는 이상 김일성의 50년을 설명해줄 정보가치는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이제부터 직시해야 할 일은 황의 망명이후의 북한에서 현실적으로 전개될 정치변동과 체제변동이다. 황장엽의 망명은 곧 북한체제변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남한이 북한의 체제변동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할 때에는 통합형인 「독일형」이라기보다는 유고형 「해체국가」의 길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인 전환점에 있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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