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서 기획공연을 할 때 우리 것과 외국 것을 어느 정도 안배하느냐 하는 문제는 실무자들에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우리 것」과 「외국 것」이라는 개념 자체도 애매하다. 그저 목소리만 큰 몇몇 사람은 『우리는 우리 것을 해야 한다』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구호만 외쳐댈 뿐 정작 눈에 번쩍 띄는 무엇을 제시한 예가 드물다. 「아내 무섬장이」(공처가)식 억지 언어같은 공연들을 조잡하게 얽어놓고 우리 것이라고 우겨댈 수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원작자라고 해서 간단히 우리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그러다보니 일제 말기에 일본말로 쓰여진 「맹진사댁 경사」라는 작품이 무슨 대단한 고전인 양 평가받는 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윤이상이 작곡한 오페라 「심청」은 독일어 대본으로 된 것이다. 소재는 우리 것이라 해도 과연 대본의 구성과 내용이 우리 정서를 반영한 것인지 살펴 볼 일이다.
문제는 올림픽같은 국제행사를 준비할 때 갑자기 「우리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역시 해결은 단순히 「우리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즐비하게 늘어놓거나 「세계를 빛냈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식으로 안이하게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행사를 치르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안된다.
세계가 열리는 시대에 우리는 당연히 개방적이어야 한다. 외국 것은 그에 대한 우리의 소화능력에 따라 우리의 살이 된다. 공연장 운영자의 철학으로서는 관객이 「우리」일진대 관객의 입맛에 맞는 것이 우리 것이다. 그렇다고 티켓이 잘 팔리면 우리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공연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사람은 관객의 입맛을 시시각각으로 점검해야 하고 낯선 것을 입맛에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연구해야 한다. 번역의 중요성도 그 중 한 예가 될 것이다. 소재의 유래가 어떻든 우리가 감동하고 우리 삶이 풍부해진다고 느낄 때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현장을 함께 사는 연주가, 연기자, 작가들의 활동무대가 많아야만 끊임없는 실험과 관객의 검증을 거쳐 「우리 것」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예술인들이 마음놓고 춤추고 달릴 수 있는 마루와 마당을 제공하는 일은 정부와 국민의 몫이다. 어찌 한 공연장에게만 의존할 수 있겠는가.<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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