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0대 과소비 어른 뺨친다/10만원 넘는 티셔츠·청바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0대 과소비 어른 뺨친다/10만원 넘는 티셔츠·청바지

입력
1997.02.13 00:00
0 0

◎유명브랜드 아니면 안입고 백화점 몰려다니며 쇼핑/계산은 거침없이 수표·카드로/밤이면 나이트클럽 점령/하루 30만∼40만원 ‘펑펑’대학 1년, 고2의 두딸을 둔 주부 P(42·서울 강남구 반포동)씨는 분에 넘치게 유명메이커 제품만을 찾는 딸들 걱정이 태산같다. 『유명메이커 것이 아니면 걸치려 들지 않아요. 그것도 수입브랜드가 대부분이에요. 요즘 10대는 사고 싶은 건 어떻게든 사고 봐요. 10만원이 넘는 티셔츠나 청바지 등을 거침없이 사 입지요. 이 애들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10대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 오가는 10대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옷 모자 신발 목도리의 상표가 쉽게 눈에 띈다. 「닉스」 「보이런던」 「아르마니」 「폴로」 등 외국 유명상표와 국산 유명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또 대개는 상표를 밖으로 드러내 남에게 보이려는 강한 의도가 느껴진다.

10대 과소비는 주로 백화점을 무대로 이뤄진다. 유명백화점은 아예 10대를 겨냥한 상품을 한데 모아 특별매장을 설치할 정도이다. 압구정동 G백화점 10대 의류매장. 하오 5시께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 멘 10대 청소년들이 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개 여러명이 몰려 다니며 쇼핑을 한다.

10대 5명이 15만원이 넘는 티셔츠를 들고 연신 물었다. 『새로 나온 모델 없어요?』 『이것보다 상표가 더 잘 보이는 것 없어요?』 『친구에게 선물할 건데 교환이 가능해요?』 그리고는 즉석에서 10만원권 자기앞 수표나 골드카드를 꺼내 거침없이 계산하기에 바빴다. K고 2학년 J(17·서울 강남구 대치동)양은 『용돈을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돈 대신 신용카드를 하루 빌려 줬다』며 『문제가 있는 카드가 아니면 매장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 N브랜드 매장직원 Y(22·여)씨는 『1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매장을 둘러보며 신제품이 나왔는지를 알아보는 애들이 꽤 많다』며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오고 물건값은 수표나 카드로 지불하는 경우가 70%를 넘는다』고 말했다. Y씨는 『10대들이 10만원이 넘는 옷을 두세벌씩 사들고 가는 건 드문 모습이 아니다』며 『부모들이 10대 자녀에게 돈이나 신용카드를 함부로 주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E여고 3학년 O(19)양이 큰 술집 영업부장으로 있는 오빠로부터 한달에 정기적으로 받는 용돈은 50만원. 옷을 사야 하거나 다른 용처가 생기면 보통 30만원쯤은 따로 받을 수 있다. 또 시간당 2,000원을 받고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5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한달 「수입」 총액은 80만∼110만원. O양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의 씀씀이가 웬만한 성인을 뺨치는 것도 당연하다. O양은 다른 10대들과 마찬가지로 용돈의 대부분을 유흥비와 의류구입비 등으로 쓴다. 주 2회 정도 친구 3, 4명과 나이트클럽에 가는데 대개 돈을 같이 모아 내지만 1인당 10만원은 들어간다. 백화점에서 한달에 2회 가량 쇼핑을 하는데 드는 돈도 50만∼60만원이다. 나머지는 음식값 커피값 교통비 등으로 쓰고 저축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10대들이 드나드는 나이트클럽에서도 그들의 씀씀이는 쉽게 확인됐다. 하오 8시30분 강남구 역삼동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D나이트클럽. 입구에는 「20세 미만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안에는 누가 봐도 10대인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3분의 2가량이었다. 취재팀은 입구에서 『어린애들 노는 곳이니 다른데로 가세요』라고 제지를 받았으나 『잠깐 구경이나 하자』고 사정해 무대 뒤쪽의 「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즉석미팅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K대 1학년 S(20)양은 『친구 생일이라 함께 왔는데 여기서는 내나이만 돼도 「엄마」 「아빠」 취급을 받는다』며 『고등학교 2, 3학년이나 재수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기본안주가 4만5,000원, 맥주 1병이 5,000원이어서 3,4명이 노는데 보통 7만∼10만원이 든다.「룸」으로 들어가면 대개 양주 1병과 9만원짜리 안주는 기본이다. 「룸」이용료도 별도로 내야 해 20만∼30만원이 든다. 그런데도 취재팀 옆방의 10대 6명은 이미 양주를 3병이나 비운 상태였다. K(18)군은 『40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는데 서로 보태 계산하면 얼마 안된다』고 대수롭지 않은듯이 말했다.

10대들이 자주 찾는 이 일대의 나이트클럽에는 보통 4인용 탁자가 110∼150개정도로 400∼700명을 수용한다. 취재팀이 찾아간 날에는 평일이라 20%쯤 탁자가 비어 있었으나 『주말에는 발디딜틈이 없다』고 D나이트클럽 영업부장은 설명했다.

D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재수생 P(18)군은 「조지오 아르마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일부 부유층 뿐만 아니라 요즘 애들은 하나같이 상표에 신경을 쓴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욕 때문』이라고 밝혔다.

광고회사의 여론조사에서도 10대의 무분별한 소비행태는 드러난다. 대홍기획이 1월 실시한 「라이프 스타일 조사」는 유명브랜드나 유행상품을 선호하는 10대의 쇼핑경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10대 67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7.9%는 유명 브랜드를 선호했다. 반면 20대는 34.4%, 30대는 30%, 40대는 29.4%에 불과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유명상표의 제품을 사는 경우」는 10대가 경제력이 있는 20대 이상층보다 5%포인트 가량 높은 40.1%나 됐다.

지난해말 제일기획의 조사에서도 「유명상표의 옷을 입어야 자신감이 생긴다」고 대답한 10대가 10명중 3.6명 꼴이었다.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Y고 1학년 C(17)군은 『친구들 대부분이 한벌에 20만원 이상하는 유명메이커 옷을 입는다』며 『유명메이커 옷을 입지 않으면 브랜드를 따지는 친구들에게 왠지 꿀리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4, 5명이 신촌 명동 압구정동 등지의 록카페에서 술 한번 먹는데 적게 잡아도 15만∼20만원이 필요하다』며 『어쩌다 한번 양주를 시켜 먹을 때는 30만원 이상이 든다』고 말했다.<이진동·염영남 기자>

◎불황속 호황누리는 ‘10대 산업’/고가 의류·외식·패스트푸드업체 매출 껑충

경기 침체 속에서도 10대를 주소비층으로 겨냥한 업종에는 불황의 여파가 그다지 미치지 않고 있다. 특히 유명메이커의 10대 상품은 전년 대비 20∼40%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는 등 불경기의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남대문·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 의류업체의 40%가 적자를 내면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부 10대는 더이상 부모들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써 버린다. 이들은 가격이 비싸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중·저가 상품보다는 고가상품일수록 10대들이 몰린다. 이같은 특징 때문에 이미 한국의 10대는 별도의 소비층으로 자리잡았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에 인기가 높은 캐주얼 의류인 지브이투(GV2)와 베이직(BASIC)을 생산하는 (주)지브이의 제품은 10만5,000∼16만원대의 고가이지만 날개돋친 듯 팔린다. 95년 매출액은 지브이투 60억원, 베이직 240억원으로 총 3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500억원으로 70%에 가까운 매출 신장을 보였다. 광고 판촉팀의 김상영씨는 『상품의 질이 안정돼 있기도 하지만 고가 정책이 오히려 잘 먹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기브랜드인 「스톰」이나 「닉스」를 생산하는 (주)태승트레이딩도 정확한 매출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지브이에 맞먹는 성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0대들의 인기상표인 (주)엘칸토의 「무크」도 95년 매출액이 5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700억원으로 40%나 신장했다. 마케팅팀 장경숙 대리는 『무크는 당초 20대 초반의 대학생을 소비층으로 겨냥해 내놓았으나 지금은 10대가 고객의 절반을 넘는다』며 『캐주얼 제품은 10대들의 취향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문제이지 경기가 좋고 나쁘냐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식산업도 10대를 등에 업고 호황을 누리는 업종이다. TGI프라이데이즈를 운영하는 아시안스타의 경우 지난해 약 350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려 전년대비 45%의 신장을 기록했다. 아시안스타 마케팅 담당직원 최종필씨는 『생일파티 등을 위해 찾아 오는 10대 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방학때인 여름과 겨울에 장사가 더 잘된다』는 말처럼 외식산업에서 10대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TGI프라이데이즈 양재동지점의 경우 평일 1,000∼1,100명, 주말 2,000여명의 고객 가운데 약 40%가 10대와 20대 초반이다.

켄터키후라이드치킨(KFC)과 롯데리아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등 10대들이 주고객인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지난해 대부분 20∼40%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10대를 겨냥한 선물용품 전문매장도 호황이다. 강남 뉴코아 백화점의 「조이하우스」는 올 1월 개점직후부터 하루 2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YMCA 이승정 청소년사업부장은 『10대 산업의 호황은 구매력을 갖게 된 10대들의 즉흥적 소비행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업체들이 10대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