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의 초점이 빗나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성역없는 진상규명이야말로 수습의 지름길일진대, 수사가 표적을 잃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음은 결코 예사문제가 아니다.이미 들끓는 여론도 그러려니와 여야정치권에서마저 빗나간 수사초점에 반발하는 온갖 해괴한 일들이 연거푸 돌출하고 있다. 여권 실세들의 깃털론·음모설 주장에 이어 거액의 떡값 수수를 시인한 야권실세의 돌연한 검찰소환 거부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마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서는 일관된 흐름이 감지된다. 검찰수사가 진짜 외압의 실체를 가려내는 대신 고도의 파워게임과 정치적 의도가 감춰진 듯한 정치권 사정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구린 구석이 노출되고 있는 정치권의 그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치자. 하지만 검찰수사가 빗나가지 않나 하는 의혹은 수사착수 초기 부정대출을 주도한 은행장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이미 제기되어 온바 있었다.
엄청난 외압이 없고서는 수천억원씩의 돈을 무모하게 내어줄 리가 없다는 게 금융권의 상식인데 검찰이 6명의 전·현직 은행장들을 수사하고서도 누구의 외압을 받았느냐는 핵심사항에 관해 캐냈거나 밝힌게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었다. 은행장 2명을 구속하면서 검찰이 내건 사유도 외압의 실체는 비켜간 채 거액의 대출사례금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검찰이 나머지 4명의 전·현직 은행장들을 풀어준 것을 놓고서도 시중에서는 말들이 많다. 그들이 알고 있을 진짜 외압의 실체에 관해 입막음하려는 정치권의 의도가 작용한 것 같다는 의혹인 것이다.
검찰수사가 은행장들 외에 한보철강을 무리하게 허가·지원해 온 관계당국자들에 대해 비등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소환은 커녕 조사 한번 않고 있는 것도 빗나간 수사초점의 또 다른 증좌로 거론되고 있다. 한보철강과 관련된 당국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 재경원·통산부의 고위직 등 한두 사람이 아니다.
검찰수사가 정치권으로 옮겨가 대출청탁 대가로 거액의 한보떡값을 받은 혐의로 여야당의 실세를 구속하거나 소환한 것 자체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치권 수사는 한보사건의 곁가지일 뿐 핵심은 어디까지나 엄청난 외압의 실체이어야 한다. 그런 원칙이 뒤집히고 있으니 갖가지 상식을 뛰어넘는 해프닝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홍인길 의원이 누구인가. 여권에서 가신중의 가신이라 불린 그가 스스로를 「깃털에 불과하다」고 했으면 문제는 정말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권주자 중의 한 사람인 김덕룡 의원마저 정치음모설을 왜 주장하고 나섰겠는가.
동교동 가신중의 가신 권로갑 의원이 1억6,000만원 수수를 시인했으면서도 검찰소환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은 결코 떳떳지 못하다. 하지만 야당의총의 결의마저 거친 그같은 거부결정이 왜 나오기에 이르렀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통치권과 검찰은 한보사건의 수사를 이제라도 과감히 바로잡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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