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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5중고 터널’ 끝 안보인다

입력
1997.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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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구인난 노동법 파동 연쇄부도·자금난/한보어음 만기 도래하는 내달초 ‘대위기’ 우려중소기업의 「5중고」. 하루 평균 40여개의 업체가 쓰러지고 있는 데서 확인되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쉽사리 풀릴 기미가 없다. 골깊은 불경기와 구인난, 노동법 개정에 따른 노동계의 동요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보사태로 크고 작은 2,000여개의 협력·하청업체가 연쇄부도 위기를 맞은데다 자금이 꽁꽁 얼어 붙어 버렸다.

올들어 한결 깊어진 불경기의 수렁은 중소기업을 더욱 옥죄고 있다. 가격인하와 할인판매 등 물량공세를 벌이는 대기업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기업이 결제방식을 자꾸만 현금에서 어음으로, 단기어음에서 장기어음으로 바꾸고 있어 하청업체의 자금회전 사정은 악화일로이다.

자금이 부족한데 인력이 충분할 리가 없다. 명예퇴직자와 실직자의 증가로 구직수요가 대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직 인력은 여전히 태부족이다. 생산직 인력이 필요한 중소기업이 고학력 실업자를 채용할 수는 없어 노동시장에서 구인·구직난이 모두 심화하는 기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 지난 연말 노동법 날치기에 따른 노동계 총파업도 중소기업 운영난을 부채질했다. 국가 기간산업인 기계·자동차 업종의 파업으로 2, 3차 하청업체에서는 생산중단과 체임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이제 총체적 위기로 여겨질 만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국내 부도업체는 1만1,589개. 95년에 비해 겉으로는 약간 줄었지만 제조업 분야는 오히려 300여개가 늘어난 3,855개로 집계됐다. 올해 중소제조업체의 경기전망도 「구름, 때때로 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게다가 한보사태는 협력·하청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비틀거리는 전체 중소기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 자금시장이 완전히 얼어 붙게 된 것이다. 이미 시중은행의 대출담당부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사실상 동결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상태이고 담보대출의 요건도 한결 강화했다. 가뜩이나 높았던 은행문턱이 이젠 쳐다 볼 수도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단자회사나 할부금융사, 금리가 높지만 다소 거래가 쉽던 사채시장도 덩달아 경색돼 어음할인율이 치솟고 무담보 대출은 아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물론 중소기업 공제사업기금 등 정부 산하단체에서 운영하는 자금지원책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업체가 혜택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한보 사태가 터진 후 20일 이상 지난 현재까지 팽배한 위기감만큼은 중소업체의 연쇄부도 사태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보관련 2,000여 협력·하청업체가 어음을 막아야 하는 시기는 이달말부터 3월초에 집중돼 있다. 전문가들은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이 시기를 고비로 중소업체의 연쇄부도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중소기업 예찬론은 수렁에 빠져 좀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이다.<염영남 기자>

◎중소기업 전문역술인 남덕씨/기업가 사주풀이와 경영컨설팅을 접목/두차례 사업실패 경험/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럴땐 이렇게…

남덕역학연구원 원장 남덕(56)씨. 두번이나 사업에 실패한 뒤 역술에 눈을 떠 중소기업인 전문역술원을 열었다. 기업가의 사주풀이와 경영컨설팅을 접목한 남씨의 독특한 운세진단은 스스로의 경험에 바탕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늘 『내가 해봐서 아는 데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식이다.

중소기업 사장 A씨는 사업확장을 위해 남씨를 찾았다. 남씨는 A씨와 가족은 물론 부장급 이상 간부진의 사주를 전부 가져오라고 했다. 『기업의 운세는 사장과 가족, 간부들의 운세가 잘 조화되야 합니다. 운이 좋게 나오는 간부는 영업부문으로 배치 해 장사를 하게 하고 운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적은 관리직으로 돌리도록 하지요』 남씨의 코치대로 A씨는 인사조치를 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고객들이 가장 자주 묻는 얘기가 사업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돌다리도 두드려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대처하라고 일러 줍니다. 급한 마음에 성급히 일을 처리했다가는 정말 망하기 십상입니다. 사업이 어려울 때 누가 도와준다고 접근하면 99%가 사기꾼이거든요』 남씨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일찌감치 손드는게 좋다고 충고할 때가 가장 가슴 아프다. 『앞으로도 계속 운이 없을 것 같은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차라리 부도를 내는 편이 낫다고 말해 줍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몇년 후에 다시 찾아 와 그때 내말을 들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운이 없더라도 6개월∼1년 후에 운이 돌아 올 사람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티라고 말해 줍니다』

그도 한때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전남 해남에서 만석꾼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31세의 나이로 종업원 2백명의 섬유수출회사인 승아기업을 설립,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오일쇼크의 후유증으로 사업이 기울면서 채권자들은 돈을 빼갔고 평소 굽신거리던 은행 간부들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사업이 잘 될때는 주위 사람 모두가 내편 같지요. 그러나 어려워지니까 모두가 등을 돌립디다』

결국 그는 78년 부도를 내고 빚쟁이를 피해 춘천의 친구집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부도가 나면 36계가 최선입니다. 채권자들이 처음에는 살기가 등등해 찾아 나서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발 다시 벌어서 갚아 줘라」는 식으로 태도가 누그러집니다』

그후에도 다시 한번 사업에 도전했으나 기반이 약해 결국 또 문을 닫아야 했다. 『두번이나 망하고 보니 사업할 팔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업에의 미련을 뒤로 하고 역술공부에 나선 거지요』

그가 현재 「관리하는」 중소기업 사장만도 2,000여명. 예약은 늘 보름정도 밀려 있고 앞으로 해외지사까지 세울 계획이다.<염영남 기자>

◎금융계 ‘부도통’ 이정조씨/부도,양 아닌 질이 문제/제조업체 본격 파산 시작/“지원 운운말고 규제부터 풀어야”/‘중기 무조건 배척’ 금융권도 책임

금융계에서 「부도통」으로 통하는 이정조(44·향영 21C 리스크컨설팅 사장)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도의 행태가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유통이나 건설업처럼 원래 취약한 업종에서 쉽게 도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제조업체들이 본격 부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한보철강 부도 직전까지는 부도업체의 숫자와 금액면에서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이는 취약 업체들이 이미 대부분 도산해버렸기 때문』이라며 『이제부터는 부도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된 데는 금융기관들이 담보가 약하고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배척한데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상장회사나 대기업이라고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의외로 많다』며 『금융기관들이 재무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은채 유명세나 기업규모 등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그는 『리스크 면에서도 튼튼한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안전성이 높다』며 『우성건설이나 한보철강처럼 대기업에 대출했다가 부도가 나면 금융기관 역시 도산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금융기관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사라질 것이며 2년내에 적어도 5∼6개 금융기관이 부도처리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일본은 이미 굵직한 금융기관 5개 정도가 파산을 했습니다. 한국의 금융기관들의 경우 파산을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는 정부도 한심하다고 말한다. 『관변 학자들과 관료들이 현장의 실태를 모르고 남발하는 정책들이 경제를 망쳐왔다』며 『차라리 정부는 지원 운운하지 말고 규제나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부도 징후를 진단하는 방법도 간단히 소개했다. 『경영자가 명함에 보직을 유난히 많이 쓴다거나 유명인사와의 친분을 자랑 삼아 말하는 경우, 갑작스레 접대가 거창해지고 광고가 많아질 때는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우스운 얘기같지만 딸이 많은 경영자는 투자에 신중하기때문에 악질적 부도를 낼 가능성이 적어요』<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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