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나라가 온통 사건투성이가 되고서야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다. 신문과 방송은 매일의 사건 파편들을 쫓아 이렇게 저렇게 보도하기에 바쁘지만 정작 문제의 근원과 핵심에는 아직 관통했다고 보기 어렵다.그점에 있어서는 정치권과 권력권도 다를 바가 없다. 심통하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가 왜 한보사태 같은 일이 21세기를 바라본다는 이런 시대에, 백주대낮 같은 공개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발생되고 또 지속되어 왔는가. 나는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권력의 집중에 기인했다고 보고 있다.
대한민국 같은 극도의 권력집중사회는, 명색이 「민주」라는 두 글자가 붙은 나라치고 그 유례를 찾아보기 드물다. 돈장사가 본업인 은행들이 전혀 돈장사가 되지않을, 위험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대에게 줄줄이 수천억, 수조원씩을 빌려주고, 약속이나 한 듯이 줄줄이 돈을 떼일 신세가 되는, 이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의 해답도 바로 지나친 권력의 집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연달아 사람이 구속되는 이 판국에 제도론을 뇌까리는 것이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근원을 더듬자면 권력구조의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닉슨시대에 미국사회에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하필이면 닉슨재임 6년동안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을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리처드 닉슨은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국사회는 닉슨의 독선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또 제도 자체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게 되어 있다. 3권분립을 통한 상호견제와 언론의 감시가 가장 대표적인 독선견제의 기틀이 되어 있다.
미국은행들은 백악관에서 백번 「구제금융」을 주라고 지시해도 자기판단과 합치하지 않으면 그런 거액대출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미국 검찰은 대통령관저에 직보하지 않으며, 미국의회는 대통령추천으로 의장을 뽑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같은 대통령제이지만 철저히 권력이 분산되어 상호 견제·감시하게 되어 있다.
왜 한국이나 중남미 등지에서는 대통령중심제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로 빠져들어 가는가. 거기엔 제도외적인 사람의 문제, 환경의 문제도 개재되어 있겠지만, 우선 기본적으로 권력분산이 제도화하면 단선적인 권력에 의한 문젯거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각책임제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각책임제는 또 그것대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자칫 효율적 리더십의 결여라든가, 지나친 파쟁의 격화 따위 염려되는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제도는 보다 합의적이고 보다 다양하고 보다 투명해서 갑자기 세상이 깜짝 놀라 자빠지는 사건이 일어날 여지는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복원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뭇매를 맞아서 기진맥진 상태에 있다. 그리하여 정치의 조정, 설득의 기능까지 거의 마비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비단 정치인이나 정당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도 대단히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의회가 살아나고 정당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도 단선적 정치제도는 손질을 요하게 된다.
자기변명 같아서 송구스럽지만, 한국의 정치권은 그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권이 한 일까지 몽땅 십자가를 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보와 정치와 권력의 3각관계를 놓고 제도론적으로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볼 계제가 된 것같다.<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새정치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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