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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들의 우정(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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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들의 우정(지평선)

입력
1997.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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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 일본총리가 얼마 전 국회의원 재직 50주년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20대이던 47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19차례의 선거에서 한번도 떨어진 일이 없으니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82년부터 87년까지 일본총리를 지낸 그는 「리크루트 사건」이란 정치스캔들에 관련되어 의회 증언대에 섰었다. 그 일로 자민당에서 제적까지 당했지만 국민의 지지를 잃지 않아 정치생명을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한 최초의 일본총리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가을 펴낸 「천지유정」이란 회고록에서 한국과의 외교비화를 밝혔다.교과서 왜곡사건과 100억달러 경협문제 등으로 양국관계가 팽팽히 긴장됐던 시대에 그는 특사외교로 돌파구를 열었다. 일본 경제계의 거물 세지마 류조(뇌도룡삼)를 김해공항으로 몰래 보내 당시 정계 실력자와의 막후교섭을 통해 경협안을 타결짓고 한국에 온 것이 83년 1월11일이었다. 그날 밤 청와대 만찬행사에서 그는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TV 동시중계로 전국에 공개된 이 행사에서 그는 한국말로 연설을 시작했고, 끝부분도 우리말로 맺었다. 즉석에서 배운 간단한 인사말 정도가 아니라, 전체 연설의 25% 정도가 우리말이었다. 평소 NHK 한국어강좌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체계적으로 공부한 실력이어서 발음도 꽤 정확했다.

만찬행사가 끝난 뒤 양국 정상은 단 둘이 만나 「2차」를 했다. 이 때 그는 「노란셔츠 입은 사나이」를 우리말로 불렀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일본노래로 화답했다. 의기가 투합해 서로 껴안기까지 한 두 사람은 그 뒤 가족끼리도 친교를 맺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공식업무가 없어도 안부전화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전씨가 백담사에 「유배」당했을 때 털양말 선물을 보낸 것도 그런 우정의 발로였다. 한사람은 퇴임후 의정활동을 계속해 표창을 받는데 한 사람은 지금 옥중에 있다. 퇴임후 자유로이 외국 정상들과의 우정을 이어가는 대통령을 가져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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