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만 읽던 고교시절 소설적 감동을 받은 최초의 작품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십년 가까운 세월, 내게 선생님은 늘 가장 가까운 작가로 남아 있다. 어쩌자고 내 삶을 이리도 깊이 건드리는가 싶은 생각 때문에. 어떤 글을 읽거나 그저 순하게 빨려드는 그분 글의 깊이 때문에. 글이란 이렇게 편하게 읽히고, 읽은 뒤에는 그것이 글이 아니라 내 삶인 것처럼 여겨져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분 글을 읽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아마도 내가 최초로 읽은 선생님의 글이 그분의 데뷔작이기도 한 「나목」이었을 것이다. 습작기라고 뚜렷이 내세울 것도 없이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던 시절,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 읽었던 그 수많은 책들 중에 그것도 끼어 있었을지 모르겠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연애소설. 연애 이상도 연애 이하도 아닌 그저 연애소설이기만 했던 것들. 물론 그 소설들로 말미암아 나는 조숙해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소설들의 장점인 감각적인 문체를 습득했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연애, 오직 연애일 뿐이었다.
선생님의 글이 나를 소설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노라고 말한다면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은 있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하지만, 내가 최초로 읽은, 그리하여 최초로 소설적인 감동을 받은 작품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나목」이 아니었던가 싶다.
전쟁 중의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고 그 두 오빠 대신 살아남게 된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하늘이 누군가를 데려가야 했다면 차라리 딸을 데려갔어야 했다고 한탄하는 사람이다. 오빠들의 목숨을 담보로 얻은 삶, 어쩐지 부당한 것 같게 느껴지는 인생…. 그 인생에 어린 전쟁의 상처들…. 그 어둡고 우울한 삶 속에 한 남자가 나타나고, 여자는 그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 자기 삶의 구원을 보고자 한다. 자기 삶, 또는 시대적인 아픔, 전쟁이 송두리째 파괴해 버린 인간에 대한 신뢰….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구원.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화가인 그 남자 역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살아있음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그런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겠는지. 이루어질 수 없는 불륜의 사랑, 소유하는 것보다 더욱 뼈아픈 애정.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들 중에서 「나목」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빌려서 읽은 책이었던가? 주인공들의 이름도 잊었고 디테일한 상황들도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러나 지금도 남아있는 것, 벌거벗은 나무의 그림…. 그 어둡고 황량한 벌판에 군데군데 총탄의 흔적을 남긴 채로 홀로 서 있는 나무의 그림…. 벌거벗음의 느낌이 그토록 뼈저리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했던 생각은 「나목」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그때의 느낌 그대로 남아 있다. 언젠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면 꼭 이런 글을 써야겠다는,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그림으로 남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때의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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