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산골서 본 ‘따뜻한’ 세상/강원도 문막 외진곳/농사 지으며 그림작업/내 궁극의 지향은 인간과 자연의 친화80년대 이른바 「민중미술」의 한가운데 있었던 한국화가 김봉준(43)씨는 3년 전부터 강원도 문막의 외진 산골마을 진밭에서 살고 있다. 미술 작업도 하고 농사도 짓고 텃밭도 가꾸면서.
늘 돌아오면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빈 집, 이 산골 마을을 그는 「더는 갈 곳 없는 내 인생 막다른 산골」이라 부른다. 그러나 텅 비었기에 채울 수 있는 것, 그에게 빈 집은 바로 「창작을 위한 여백」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그린, 스스로 「붓그림」이라 이름 붙인 그림들과 단상의 기록들을 모은 「붓으로 그린 산그리메 물소리」(강간) 가 출간됐다.
비와 바람, 작은 새, 소, 두릅, 눈덮인 설산의 모습 등 온갖 자연의 사상, 산골의 아이들과 논두렁에서 새참 먹는 농부들의 모습까지, 세상에 대한 섬세한 마음의 결들을 붓끝으로 옮긴 그림들이다.
그의 그림 세계는 무척 다양해 보인다. 소박한 산수화도 있고, 거친 칼끝이 느껴지는 민중 계열의 목판화도 있으며, 불화인 감로탱화도 있다. 이런 그림들과 함께 그는 산골에서 배우고 뉘우치는 생활 이야기, 그간의 자신의 작품과 창작에 얽힌 이야기, 미술관을 털어놓았다.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풍물을 접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 민속문화에 심취한 이야기, 77년 이후 4년간 봉원사 만봉 스님에게서 직접 전수 받은 탱화와 민화. 그러던 그는 83년 미술동인 「두렁」을 만들어 대중 목판화운동과 걸개그림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87년 이후에는 부천에서 지역문화운동을 하면서 생활미술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의 흐름은 「두렁」에겐 곤혹스러운 시대였다. 시대는 노동미술, 정치미술, 포스트모더니즘 하면서 발빠르게 흘러갔다… 밤새 불면증에 시달리고 술 담배로 잊어버리기를 매일 시도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나날이 스스로를 더 이상 추스를 수 없게 했다』 전통과 현대, 탈현대를 모두 거쳐가는 이 시대가 그로 하여금 발길과 붓길을 산골로 돌리게 한 모양이다.
산골 생활을 자칫 또다른 「호사취미」로 여기거나, 목판화에서 풍속화 산수화까지 그림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종잡을 수 없고 힘을 낭비한다고 우려하기도 하는 주위의 친지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궁극의 지향은 인간과 자연의 친화이다. 그 틈에서 정신의 자유로움을 찾으려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나를 아무도 못 말릴 것이다. 아무도 못 말릴 일 저지르려고 다른 것 다 포기하고 예술의 길을 택한 것 아닌가』<하종오 기자>하종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