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 어릴적 설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 어릴적 설은…

입력
1997.02.07 00:00
0 0

◎화가 김점선/차별없이 차례… 경건하게 행복했다소나무가 언제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그 가루를 모으고 무엇을 섞어서 단단하게 만드는지를 나는 몰랐다. 그래도 해마다 설이 되면 송화다식을, 송화가루경단을 먹었다. 할머니는 뭐든지 다 알고 있었고 뭐든지 다 만들어 주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여러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갈 때 나도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얀 도화지를 한 손에 펴들고 다른 한 손으로 꽃이 달린 소나무 가지를 잡아 당겨서 도화지 위에다 대고 흔들면 노란 가루가 떨어졌다. 샛노란 송화가루.

설날은 이렇게 봄인가, 여름인가 한, 그런 때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렇게 좋은 것, 귀한 것, 아름다운 것들을 철에 따라 갈무리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설은 풍성하고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도 내게는 그저 「믹믹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가 씻겨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었다. 또 누군가는 구멍 뚫은 조개를 내 입에 대주면서 우우하는 소리를 내보라고 했고 『재밌지? 너 가져』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여러 색의 비단을 바른 아름다운 조개를 주면서 『너 가져. 이쁘지』하고 말했다. 내가 수건을 흔들면서 춤추는 흉내를 내다가 책상위에 있는 투명한 파란색, 고양이 모양을 한 유리스탠드를 떨어뜨려 깨뜨려도 누구 하나 야단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내 어린 시절의 설날이었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했었다.

열 살을 좀 넘을 무렵, 나는 이미 밖에서 여자아이가 받는 차별대우를 슬프게 체험했다. 해마다 습관적으로 치뤄오던 차례지내기가 그 해에는 가슴 저미는 감격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나이도 성별도 구별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순서대로 조상의 혼령 앞에 섰다. 그리고 다같이 절을 했다. 나중에는 한 잔의 술을 조금씩 나누어서 입에 물었다. 그 한 모금의 술에는 향기가 있었다. 입속에 침이 고이고 섞여서 향기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물고 있었다. 나를 차별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주는 부모님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 설날에 경건하게 행복했다. 슬픔을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낮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연을 날리면서 동생들과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깎아준 막대기로 자치기를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어머니가 설빔으로 손수 지어준 노랑 저고리와 빨강 치마를 입은 채,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까맣게 잊은 채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소설가 은희경/맛있는 음식·설빔 그 풍요로운 기억

몇 년전 설날에 나는 부모님이 계신 전주에 내려가기 위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을 나섰다. 초보운전자였던 나는 고속도로도 처음 타 보는지라 몹시 긴장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눈까지 쏟아지는데 길은 뚫리지 않았다. 뒷자리의 아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긴 여행에 지친 그 애들의 얼굴에서 설날을 기다리는 설렘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필요할 때마다 새옷을 사입고 자란 그 아이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릴 설날이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와이퍼가 가르는 눈발 속에서 뚜렷이 떠올릴 수 있었다. 밤새 한 잠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던 어머니가 대문을 열어줄 때의 활짝 웃으시는 표정을.

내 어린 날의 추억 속에는 설날보다 오히려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설날이 오기 며칠 전부터 세상은 술렁거렸다. 5일장에 온갖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드는가 하면 읍내의 모든 「점방」들도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았다.

설날 하루 전이 되면 나와 동생은 어머니 손목을 잡고 큰집에 갔다. 앞치마를 입은 큰어머니가 『너희들 이제 어른이 다 됐구나』라고 덕담을 하시며 맞아 주었다. 열린 부엌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말할 수 없이 향긋한 그 기름 냄새. 친척들이 하나 둘 씩 도착하고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여자애들은 골방에 들어가 서로 머리를 땋아 주거나 비밀 얘기를 속살거리고, 남자애들은 뒷마루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딱지치기를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 오빠들은 머리를 맞대고 무슨 어른스러운 일을 도모하는 듯하지만 알고보면 고작 찹쌀떡 장사를 해보자는 둥 꼬마들을 따돌리고 제방에 나가서 연을 날리자는 둥 별 것 아니다.

더 작은 꼬마애들은 이따금 부엌에 들어가 자기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떼를 쓰다가 큰 어머니가 주는 생선전을 얻어들고 나와서 오빠들에게 뺏기기도 한다.

어머니들이 약과에 설탕물을 끼얹거나 떡을 칠 동안 남자 어른들은 방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며 생밤을 친다. 밤늦게 도시에 사는 친척들이 도착한다.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찬 기운이 도는 대청마루에는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전 산자 곶감 조기찜 고기적이 잔뜩 쌓여 있다. 내게까지 차지가 올지는 모르지만 가까이에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 벽장 속에는 내 설빔이 들어 있다. 나는 잠을 못 이룬다.

내 어릴 때의 설날은 특별한 풍요이자 혈육의 친화감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일깨워주는 설렘의 축제였다. 비록 어른이 되고 난 뒤부터 그 설렘을 잃어버려야 하는 것이 성장의 수순이지만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