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요즘 「이러다가 한국사람들 국제고아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을 계기로 틈새가 노출된 한미간의 불협화음, 대우의 톰슨사 인수불발로 야기된 프랑스와의 불화, 종군위안부 위로금 지급 문제로 불거진 한일간의 입씨름, 핵폐기물 북한 이전 문제로 곪아터진 대만과의 외교분쟁 등 우방들과의 사이에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우리의 자존심과 국익이 걸린 민감한 사안들이어서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걱정은 목표를 관철하는 방법에 있다.
민족감정이 결부된 이런 일들일수록 외교 일선을 맡은 관리들이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꼬이기만 하는 것이 상례다. 되도록이면 소리나지 않게, 상대국과 평소 긴밀한 접촉을 유지해 두는 것이 기본이다.
언제든 분쟁이 표면화할 수 있는 국가간의 현안을 태만히 취급하다가 막상 일이 터진 뒤 책임을 회피해 보자고 상대국 정부를 비난하고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남발하는 우리 외교관들의 잘못된 행태가 우방과의 마찰을 불필요하게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만과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와 친분이 돈독한 한 대만 정치인은 핵폐기물 북한이전계획을 항의하러 간 우리 민간대표단에게 『대만정부는 지난해초 한국정부에 이를 알려줬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뒤늦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겠다』느니 뭐니 떠들어 댄 우리 외무부의 공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북한과 대만의 접촉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왕래가 잦아지면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어떤 거래가 이루어지는지 주의깊게 살폈어야 마땅하다. 그런 것을, 폐기물이전계획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고도 아무일도 않고 있다가 상대국에 공갈협박성의 경고나 내놓는다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종군위안부 위로금지급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이 터지자 우리 외무부는 사전 통고도 없이 일을 벌였다고 일본정부의 신의 없음을 비난했지만 그들의 얘기는 다르다. 일본국회에 출석한 외무성관리는 그 사실을 사전에 한국정부에 알려줬다고 증언했다는 보도다.
어느 쪽 얘기가 진실인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국가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국민감정에 편승해서 상대국 정부부터 비난하고 나서는 잘못된 관행에 있다. 관리들의 이런 교활한 「책임 떠넘기기」가 우방국민 사이의 불화와 균열을 깊게 하고 마침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한미공조에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북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우리쪽에 책임이 없지 않다. 톰슨인수문제로 촉발된 프랑스와의 불화도 그 발단은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공개해버린 우리측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만일 포항제철을 1달러에 인수한다면 당신네는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 프랑스사람들의 반문이다.
서독의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한국이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한국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주변 관련국들에 기회있을 때마다 알려 안심시켜 둬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금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웃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거칠고 공격적인 사람들이 통일이 된다면 과연 우리가 발뻗고 잠잘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울 때 좋은 친구가 아쉬운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친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신의로 만들어진다. 지금 우방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돼 있는지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한국인이 안심하고 사귈만한 사람들로 이웃에 인식되느냐의 여부는 일차적으로 외교관의 행동에 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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