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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여성들/더이상 남성의 들러리는 싫다(한국의 30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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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여성들/더이상 남성의 들러리는 싫다(한국의 30대:6)

입력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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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지식·프로의식 무장 우먼파워 과시/판검사·국회의원·군인 등 금녀의 영역서/선수의료트레이너 등 새 직종까지 도전/그러나 가정과의 양립은 아직도 먼일30대 여성들이 뛰고 있다. 전문지식과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30대 여성들이 남성위주의 직업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강한 자의식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직장과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런 점에서 30대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캐리어우먼시대를 연 실질적인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그 이전 세대들의 사회진출도 적지 않았다. 40, 50대 여성도 교육 법조등 일부 전문분야에서 활약해왔고 섬유 봉제 가전등 노동집약적인 산업분야에서 경제개발의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능력이 탁월한 개인」이나 「산업역군」정도로 평가받는데 그쳤다. 남성위주의 경제풍토에서 객체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70, 80년대 대학에서 교육받은 30대 여성들은 이같은 한계를 넘어 우리사회의 영향력있는 전문직업인군으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다르다.

통계청 경제인구연보에 따르면 95년 현재 여성 전문직 경제활동인구는 91만9,000여명으로 이중 30대 여성은 25%가량인 23만여명. 이들은 판·검사나 변호사 국회의원 변리사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군인 등 이른바 「금녀의 영역」에서까지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본부 김태홍(38) 박사는 『공군사관학교에 이어 올해부터 육군사관학교의 여성입학이 허용되는 등 남성만의 성역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며 『특히 사회의 다변화로 여성에게 유리한 신종 직종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들의 활약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의 말처럼 30대 여성의 전문직 진출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패션디자이너 메이크업아티스트 등 여성만의 분야뿐만 아니라 판·검사나 의사 연구원 세무사등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종이라면 일의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는다.

국내 최대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를 이용해 냉중성자 물성연구용 전산프로그램을 개발중인 한국원자력연구소 박선희(36) 선임연구원은 『거듭되는 밤샘연구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런 매력 때문에 아직 결혼을 미룬 채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세무사 박상희(37)씨는 『여성을 남성보조원쯤으로 여기는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껴 7년여간 다니던 보험회사를 87년에 그만두고 세무사 시험에 응시했다』며 『꼼꼼한 서류검토가 생명인 이 분야에서 남성보다 유능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전문직에 대한 30대 여성들의 직업관은 20대나 40대와 구별된다. 20대의 직업관이 실리적이고 40대가 사회봉사의 의지를 담고 있다면 30대는 이념적 성향이 강하다. 서울지검 북부지청 조희진(34) 검사는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81년의 학내분위기는 80년 5·18광주민주화 항쟁의 여파로 이념의 물결로 가득찼다』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여성해방운동의 열기는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30대 여성들의 활약은 여성이 비교우위가 있는 신종 전문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선수의료트레이너(AT·Athletic Trainer)나 음식코디네이터 인터넷정보검색사 텔레마케팅 등 섬세하고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한 직종에서 그들의 역할은 독보적이다. 프로선수의 부상예방과 치료 등을 책임지는 선수의료 트레이너 국내 제1호인 어은실(38·LG프로야구단) 박사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당시 국내에는 교육과정이나 관련 서적이 전혀 없어 95년 남편과 떨어져 살 것을 각오하고 유학길에 올랐다』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종 전문직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광고사진 촬영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 배치하는 신종 전문직인 음식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장정아(32)씨도 『여성이라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미적 감각을 활용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반 대기업에서도 30대 여성들은 곳곳에 포진해있다. 95년부터 성·학력 등 모든 차별요소를 폐지한 삼성그룹의 경우 2월 현재 여성사원의 비율이 전체 인력의 30%선인 5만1,000여명이나 된다. 이중 30대는 3,030명으로 전체 여성사원의 6%정도에 불과하지만 관리직을 포함, 전산 디자인 상사주재원 해외지역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삼성그룹 인사팀 이우희 전무는 『30대 여성은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남성이 갖추지 못한 섬세한 일처리솜씨에다 그동안 여성사원들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됐던 책임감 부족을 극복하고 있어 조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남성위주의 가치관과 사회적 여건의 미비탓으로 직업과 가정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결혼과 함께 원죄처럼 부여되는 출산과 양육 가사의무 등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Y병원 마취과 전문의 K(34)씨는 이에 대해 『남성이 직장일로 가정에 소홀해도 「나쁜 아버지」가 되지 않지만 여성은 「무심한 엄마」로 비난받는다』며 『남성위주의 이같은 가치관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직업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결혼을 미루고 독립하기도 한다. 통계청의 인구동태연보에 따르면 전체 여성중 30∼39세에 결혼하는 여성은 86년 전체 여성의 3.6%에 불과했으나 90년에는 5.2%, 94년에는 5.7%로 늘었다. 부동산뱅크의 이문숙(32) 컨설팅사업부장은 『여성이 전문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남성보다 배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자기개발을 위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95년 부모님을 설득, 독립한 후 현재 18평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LG―EDS 기술연구부 원은희(34) 과장은 『여성도 무능하면 「명퇴」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전문직 여성들의 자기개발노력이 쉽지 않음을 강조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44) 교수는 『30대 여성은 남성우위의 우리사회에서 개인차원이 아닌 조직화한 집단형태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첫 여성세대』라며 『탁아시설의 보급과 남녀차별 감소, 신종 직종의 출현, 여성의 자각 등이 이를 가능게 한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홍덕기 기자>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54%로 미·독·불보다 휠씬 낮아/30대 근로자중 여성은 18% 불과/고학력추세 불구 남녀불균형 여전

30대 여성들은 캐리어우먼으로 스스로를 각인하는데 성공했지만 외국여성들에 비해 경제활동참가율은 저조한 편이다. 그만큼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이나 지금 우리사회의 구조가 여성취업에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94년)은 54.1%로 독일 97.2%, 미국 74.2%, 프랑스 79.5%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도 92년 기준 57.6%로 우리보다 높았다.

전체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미국 53.9%, 싱가포르 49.4%, 일본 45.7%인 반면 우리나라는 39.6%에 그쳤다.

30대 근로자중 여성의 비율은 아직 낮은 편. 95년 노동부의 사업체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30대 근로자 195만7,717명중 여성은 31만5,727명으로 17.9%에 불과했다. 30대 근로자 5명중 여성은 1명도 채 안되는 셈이다.

전체여성의 취업양상도 고위·전문직보다 서비스·단순직이 압도적으로 많아 여성의 고학력추세에도 불구하고 남녀불균형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박일근 기자>

◎인터뷰/인테리어 전문가 신승영씨/일본여행중 전공바꿔 유학 결심/밤샘공부·막차귀가로 홀로서기/“인생에 적령기란 없다” 일·가정 최선

신승영설계공방 대표 신승영(33·여)씨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30대 신부이다. 일본 유학과 일에 푹빠져 세월가는 줄 모르다가 지난해 9월 문대권(33·사업)씨와 결혼했다. 신씨는 『인생에서 적령기란 없다』며 『일이든 결혼이든 적령기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신씨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4년. 명지대 일어일문학과 2학년이던 신씨는 친구들과 일본 도쿄(동경)로 여행갔다가 문화충격을 받았다. 세계 유수의 패션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아오야마(청산)거리에서 신씨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독특한 디자인에 매료돼 일본유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무남독녀인 신씨가 남들처럼 결혼해 행복해지길 바라는 부모님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신씨는 『주어진 삶이 아닌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며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5년간의 말미를 얻어 89년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서 홀로서기는 고집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자신과의 힘든 싸움을 이겨내야 했다. 89∼92년 일본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인테리어센터스쿨(ICS)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학원으로 의뢰가 들어온 작품의 200대 1 모형을 만드는 작업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이틀에 한 번 꼴이었다. 매달 120명중 12명만 뽑아 갖는 학원의 발표회에 빠짐없이 나갈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다. 92년 크리스마스이브날 드디어 3시간에 걸친 인터뷰끝에 일본 최고의 인테리어 회사라는 「야스오 곤도 디자인 오피스」에 입사할 수 있었다. 신씨의 도쿄생활은 막차인생이었다. 항상 밤 12시10분까지 일하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93년 12월 약속대로 5년을 채우고 귀국한 신씨는 이듬해 3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신승영설계공방을 냈다. 국내 첫 작품은 홍대앞 일식레스토랑 「친친」의 설계 및 시공이었는데 이 곳이 인테리어잡지 등에 소개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동양적인 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신씨는 항상 모형을 먼저 제작해 본 뒤 시공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신씨는 『30대 여성이 일을 갖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만큼 남편과 가족등 주변의 이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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