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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움직인건 「4억」 아니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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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움직인건 「4억」 아니다(사설)

입력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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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 수사가 착수된지 열흘째인 5일 검찰이 신광식 제일은행장과 우찬목 조흥은행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수재)혐의로 구속했다. 두 은행장은 한보철강에 각각 3,891억원과 2,900억원을 대출해 준 대가로 4억원씩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라면박스에 넣은 현찰을 정태수 총회장에게서 직접 받았다 한다.이들에게 편법대출 압력을 행사한 세력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인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오른팔인 권노갑 의원이 의심을 받고 있다. 권의원은 돈받은 것을 시인했지만 당을 위해 썼으므로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고, 홍의원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보사건을 보는 일반의 의혹은 이것으로 풀릴 수가 없다. 상식을 벗어난 은행장들의 한보대출 행각을 두 은행장의 구속사유에서 도저히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정치권 실세라 해도 그 사람 혼자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믿을 사람도 없다. 3년동안 청와대 살림을 꾸려왔던 총무수석비서관 출신 의원 한사람이 이 엄청난 의혹의 최종적인 배후라고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당진제철소 착공 이후 한보가 조성한 6조원 이상의 자금중 2조원 정도의 용도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돈이 모두 로비에 쓰였다는 증거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이번 사건의 윤곽도 드러나고 의혹도 풀릴 것이다. 검찰의 수사는 이같이 기초적인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태수 총회장이 함구를 계속해도 수사는 얼마든지 달리 길이 있다. 우리 검찰엔 그런 능력도 있다. 예를 들어 100억원 이상의 자금대출은 정부의 승인사항이라 하니 그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책임과 의무가 검찰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검찰이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할 일은 예단을 갖고 수사를 한다는 인상을 불식시키는 일이다.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또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정씨가 수십명의 정치인들에게 몇천만원씩의 돈을 준데 대해서는 대가성이 없어 처벌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검찰주변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면 정치인들은 대가성 없는 돈을 받아도 괜찮다는 말이 된다.

공무원들은 몇십만원만 받아도 처벌하고 정치인은 대가성만 없으면 괜찮다니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정치자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관련법을 원용해서라도 처벌하는 것이 법감정에 맞는 일이다.

그리고 검찰은 정치권에서 불법대출외압의 일부 실체가 먼저 터져 나온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검찰이 소환 한번 안했는데도 한의원이 거액을 받았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사태란 곧 검찰수사의 파행과 권력층 눈치보기를 극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검찰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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