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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우상으로 볼 것인가/각 종교 제사에 대한 입장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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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우상으로 볼 것인가/각 종교 제사에 대한 입장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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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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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생명있는 것만 경배’ 원칙따라 금지/가톨릭­지방에 ‘신위’라고 쓰지않으면 허용/유교­제례는 종교가 아니라 효도의 연장전통 풍속인 제사에 대해서는 종교마다 태도가 다르다. 또 제사로 인한 집안 갈등의 상당 부분은 가족성원간의 종교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철저히 금하고 있다. 개신교는 원칙적으로 생명이 있는 것만 경배하도록 한다. 죽은 사람, 물체, 형상에 대해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한 구절이 전통제사 거부의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교계 일각에서 약하게나마 제례 토착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일부 목사들이 제한적인 제례허용 태도를 보이다가 교단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기독교 장로회의 한 목사는 『제사가 우상숭배 차원일 경우 일단 거부하지만 어느 범위가 우상숭배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교단내에서도 견해가 통일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기독교총연합회의 한 목사는 『원칙적으로 성경의 말씀에 따라야 하지만 집안의 화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제사 음식 만들기를 도와 주는 정도는 암묵적으로 용인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제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막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태도가 유연한 편이다. 가톨릭에서는 조상을 신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톨릭은 조상에 대한 효의 차원에서 제사를 용납하지만 조상을 신으로 보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위패나 지방에 신위를 쓰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제사때 절을 하는 단순한 행동을 우상숭배로 보지는 않는다. 가톨릭 중앙협의회 사목연구소의 최철 부장은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심한 불화가 생길 정도라면 전통방식 그대로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도 굳이 막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가톨릭이 제사에 대해 탄력적인 견해를 갖게 된 것은 동아시아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할 무렵 제례문제로 심한 박해를 받았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이문제가 포교의 큰 걸림돌이 되자 탄력적인 교리 해석으로 포교범위를 넓혔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미 1939년 교황 비오 12세는 「중국의례에 관한 훈령」에서 『제사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제사에 관한 교리를 정리했다. 또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에도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 대한 효를 실천하고 가족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평화신문은 2월2일자에서 「조상제사는 우상숭배와 무관」이라는 제목하에 교리에 위배되지 않게 차례 지내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하고 향을 피우고 절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 조상의 영정을 모셔도 되고 위패에 신위라고 적지만 않으면 이름을 적어도 된다. 가톨릭 중앙협의회내에서는 상제례 토착화연구소 특별위원회가 발족해 가톨릭 신자를 위한 조상제례 시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유학자들은 개신교 등에서 제례를 거부하는 것을 제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례연구원의 김득중 원장은 『제례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섬기는 것이며 위패에도 조상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며 『제례는 종교가 아니며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조상들에 대한 효도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조재우 기자>

◎제사의 의미와 기능/‘사후에도 효’ 개념서 출발/가족화합·일종의 종교 기능/지나친 형식집착은 피해야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석전대제) 기능보유자 권오흥씨는 『제사는 살아 계신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는 효의 개념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생명을 주고 키워주신 부모와 조상에 대한 생전의 효도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제사로써 계속 보답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제사의식의 근본에 깔려 있는 효사상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구성원의 화합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발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제사를 통해 가족·친족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적 관계 확대에 필요한 대인관계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제사의 이념이라 할 조상에 대한 효도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기능을 가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정당하게 획득한 재화로 제수를 마련해 조상을 모셔야 자손에게 화가 미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 또한 개개인의 도덕성이 국가의 건전한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띤 것으로 얘기된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사의식은 일종의 종교 의식이 되기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조상의 음덕을 기원하게 된다. 또 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워 질 수록 열심히 제사를 챙기려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제사라는 의식을 통해 달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제사는 굳이 염색체에 새겨진 유전정보를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생명의 근본과 맥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한 유학자는 『쿤타 킨테만 뿌리 찾기에 나서느냐』며 『누구든 자신의 뿌리를 잘 알아야 현재의 삶이 더 충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핵가족이 보편화하고 정신없이 돌아 가는 현대 생활에 있어서 제사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제사의 형식을 두고 가족성원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 수 있고 지나치게 형식에 집착할 때 효라는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제사형식이 일관성을 잃을 경우 본래의 신성함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전통 농촌사회에서의 제사의 사회적 기능은 사회변화에 따라 사라졌다. 동전의 양면인 제사권과 상속권이 장자에 집중돼 가부장제의 내용을 강화하고 그것이 다시 중앙집권적 왕권의 강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기능은 이제는 자취를 찾아 보기 힘들게 됐다.<조재우 기자>

◎벽진 이씨 종가며느리 유정하씨/‘제사 잘모시기’가 내 인생이죠/35년 한결같이 1년에 12번 제사/“조상 잘 모신덕에 자식농사 성공”

『조상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는 게 제 좌우명입니다. 제사는 저에게 종교이자 인생이고 평생을 제사와 함께 살아 왔으니까요』

설을 앞두고 제기를 손질하는 벽진 이씨 종가 며느리 유정하(59·서울 송파구 문정동)씨의 손길엔 정성이 가득하다. 제기를 닦는 틈틈이 며느리에게 손질방법과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대를 물려 내려 온 놋쇠 제기들이 녹하나 없이 반질반질하다.

유씨의 「종가제사 모시기」는 올해로 35년째. 63년 25세의 나이로 벽진 이씨 완석정파 13대 종가로 시집오면서 시작된 일이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친정 역시 서애 유성룡의 맥을 이은 14대 종가여서 시집오기 전부터도 종녀로 수없이 많은 제사준비를 해 왔다. 그래선지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제사준비를 해 왔다. 시어머니가 환갑을 맞은 73년부터는 아예 제사준비 일체를 물려받아 총괄해 왔다.

유씨가 준비해야 하는 제사는 1년에도 10번. 시조 제사인 「불천이제사」를 포함해 5대 봉사를 하고있고 설과 추석의 시제까지 합치면 12번에 달한다. 더구나 13대 26기나 되는 선조의 묘소에서 봄, 가을로 지내는 묘제까지 합치면 1년을 거의 제사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위에서는 왜 제사를 줄이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유씨는 서울시 공무원인 남편 이종건(61)씨 때문에 시어머니가 홀로 지키고 있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의 본가에 자주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 늘 죄스럽다. 기제사는 대개 서울집에서 지내지만 시제나 불천이제사는 꼭 고향에서 지낸다. 제사음식은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서 차로 운반한다.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5대의 조상께 모두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할 음식량도 만만찮다.

슬슬 제사준비가 힘에 부치기 시작하지만 아직 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 줄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물려 주겠지만 제 힘이 남아 있는 동안은 제 의무를 다할 겁니다.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유를 주고도 싶구요』

유씨는 슬하의 2남1녀가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라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장남 선하(34)씨는 독일에서 교통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경하(31)씨는 은행원으로, 딸 헌숙(29)씨는 법관으로 일하고 있다. 제사를 잘 모셔 자손들이 모두 잘 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웃음짓는 유씨의 얼굴엔 고생의 흔적보다는 보람과 긍지가 배어 있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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