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르게 끝나는 이색 토론연극/극진행 이의 있을땐 “정지”를 외치세요 그리고 당신이…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토론연극 「산재」(극단 한강·7일까지 평일 하오 7시, 토일 하오 4·7시·02―762―7036)가 연극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산업재해를 다룬 것도 특이하지만 토론연극이라는 형식때문이다.
배우와 관객이 단순하게 의견을 말하는 토론이 아니다. 극 진행에 이견이 있는 관객이 『정지』하고 외치며 연극을 정지시키고 직접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다. 연극을 중단시키고 작품의 결말을 바꾸는, 배우이자 작가·연출가인 관객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극을 보다 무대로 뛰쳐 나가는 「배우」가 하루에도 여러명된다. 배우가 하던 역할을 이어받아 자기스타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연극은 매일 다르게 끝난다.
『정지』는 수백년에 걸쳐 쌓은 서구 사실주의연극의 객석과 무대 사이에 가로놓였던 제4의 벽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외침이다.
작품은 과로사하는 40대 샐러리맨, 프레스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를 당하는 생산직 근로자, 위장병이 도진 백화점 점원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 개의 단막극을 연기한 뒤 관객과 함께 한 가지를 그 날의 토론연극으로 정한다.
어떤 날은 과중한 업무부담을 적당히 나누고 안배해서 쓰러질뻔한 샐러리맨을 되살리고, 어떤 날은 작업반장의 솔선수범 덕분에 사고없이 잔업을 마치고 조촐한 술파티를 벌인다. 속 쓰린 백화점 점원은 오는 손님을 뒤로 하고 식사하러 가 버린다.
토론연극은 브레히트를 남미에 수용한 진보적 연극인 아우구스토 보알이 창시한 형식이다. 연극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구조적 모순을 인식시키고 해결책까지 유도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보알은 『연극은 혁명연습』이라고 말했다. 물론 의도한 대로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무대엔 변수가 너무 많고 관객들은 역할을 해내기가 익숙지 않다. 극의 표면적 상황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사회구조적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연극놀이인 것은 확실하다. 산업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그 이해를 더 깊게하는 효과도 낸다. 연극평론가 이영미씨는 『토론연극의 수용은 사회적 맥락이 달라 역효과를 냈던 브레히트에 비해 한국적 정서와 통하는 점이 많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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