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개사 거느렸던 ‘옌볜의 큰손’/학력은 중졸 보따리장사로 시작거액사기로 지난 달 29일 공개총살당한 재중동포 한옥희(41)씨는 「옌볜(연변)의 큰 손」으로 불린 인물이었다. 160㎝ 정도의 키에 피부가 희고 당차게 생긴 한씨는 불법적으로 끌어들인 돈으로 운영했지만 한 때 지린(길림)성내 제1의 사영기업 「지린성 우전공업무역총공사」의 총경리(사장)로 산하에 10여개의 기업을 거느렸다. 지린성 훈춘(혼춘)시에서 태어나 중졸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입지전적 성공으로 한 때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82년 천, 옷 등을 파는 보따리장사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투먼(도문)시로 옮겨 돈을 벌었고 이불공장을 차려 갑부 개체호(자영업자)가 됐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중국당국은 거액의 자금을 융자하며 그를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훈춘시 세무국에 재직중인 오빠도 사업확장을 도왔다.
한씨는 89년 미국교포와 합작, 각각 200만달러 규모의 신사복공장과 가죽 피혁공장을 세웠고 90년에는 화물트럭, 자가용 임대를 주로 하는 자동차 운수회사를 설립하는 등 사업을 눈덩이처럼 키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막대한 돈이 필요해져 이 쪽에서 돈을 빌려 저 쪽 돈을 갚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급기야는 빚이 3억6,288만위안(약 362억8,800만원)으로 늘어났다. 한씨는 은행금리의 3∼5배가 넘는 월 3∼8%의 이자를 준다며 돈을 끌어들였다. 은행돈은 물론 개인재산 대부분이 한씨에게 흘러 들어가 한씨가 파산하자 이 지역 금융계가 마비될 정도였다.
수천명의 피해자중 2명이 자살하고 비호하던 공무원 언론인 등 수명이 구속되면서 한씨를 처벌하라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한씨를 잘 아는 사람은 총살 소식을 듣고 『살려두기에는 원성이 너무 컸다. 어떤 의미에서 한씨는 무분별한 정책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베이징=송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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