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핵폐기물 수출은 핵폭탄 투하나 마찬가지”/관리·처리능력 의문… 한반도 전체 영향 우려/미·중 통한 압력으로 북·대만 거래 저지해야/우리도 원전짓기 앞서 대체에너지 개발 등 노력을북한이 대만의 핵폐기물을 수입, 매립키로 해 한반도가 방사능오염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인의협) 핵문제분과장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핵의 위험을 경고하며 반핵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는 또 80년대 중반부터 핵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핵전쟁방지 국제의사회(IPPNW)」의 활동에도 적극 동참해 왔다. 『평화와 복지를 책임진 의사들은 환자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인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핵위협을 예방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는 황교수를 만났다.<편집자 주>편집자>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반입으로 한반도의 환경재앙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이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으로 생각합니까.
『경수로를 건설하는 데도 한국과 미국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북한의 핵기술과 경제력의 현주소입니다. 선진국에서도 골칫거리인 핵폐기물을 북한이 처리는 커녕 관리조차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궁핍한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서 핵폐기물을 반입하는 만큼 북한은 안전성보다 비용절감에만 신경을 쓰리라 예상됩니다』
―일부에서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안전하다는데, 위험성은 없는지요.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고준위에 비해 방사능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지 위험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준위 핵폐기물도 종류와 효과는 다르지만 세포손상과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생식기능과 기형아발생 등 후대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또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식물과 지하수를 섭취하면 체내에 방사능이 축적되는 2차오염으로 피해가 이어집니다』
―핵폐기물이 북한에 계획대로 반입될 경우 우리가 당하게 될 직·간접적인 피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방사능에 오염되면 그 피해가 수만년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합니다. 한반도는 좁은데다 지하수맥이 서로 연결돼 있어 이같은 수맥을 타고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황해북도 평산에 매립한다면 서해까지 방사능오염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핵폐기물 북한반입 저지를 둘러싼 환경단체들의 반대운동으로 한국대만 국민감정 싸움이 빚어지는 양상입니다.
『대만의 대다수 국민은 핵폐기물 수출에 반대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잘못된 극우주의는 존재합니다. 대만이 우리 항의단을 강제출국시킨 것은 과잉반응입니다. 우리가 리덩후이(이등휘) 총통 화형식을 한 것은 그들에게 강력한 항의를 전달하고 인류재앙의 가능성을 알린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핵폐기물의 북한반입을 저지할 수 있는 적절한 해결방안이나 대응방법은 없겠습니까.
『핵폐기물 이동은 대만북한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처리기술도 없는 북한에 핵폐기물을 수출하는 것은 아시아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 등의 반대를 대만정부가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대만과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압력을 넣어 반입계약이 취소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이 재고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북한이 사고를 일으키면 남한은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하고, 이것이 대북정책의 현실입니다. 북한이 계약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처리비 2,000억원을 우리가 보전해줄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습니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기보다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하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과 핵폐기물 보관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났을때 당시 소련은 물론 서방도 그 피해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핵발전을 하는 국가와 기업들의 이기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전도 안전하다고 하지만 언제 어떤 경로로 사고가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 핵폐기물도 매립할 장소를 못 찾아 원전에 임시보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요가 있다고 공급을 늘리기보다 우선 수요를 줄이고 에너지효율의 극대화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노력해야지 수요 충당을 위해 원전을 마구 짓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는 어떤 단체이며 「핵전쟁방지 국제의사회(IPPNW)」는 무슨 일을 합니까.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는 87년 11월 의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고 직업병 환경 등 그동안 다소 무시되었던 분야에 의사들이 적극 참여하자는 취지로 발족됐습니다. 그 중 핵문제분과는 핵무기나 원전의 핵폐기물 등에서 발생하는 방사능폐해문제를 의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IPPNW는 미국과 소련의 저명한 심장병전문의들이 핵전쟁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평화와 복지에 앞장서야 할 의사들이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종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취지에서 81년 설립됐습니다. 냉전시대였던 85년에는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이 단체가 펴낸 「핵전쟁과 인류」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그들의 활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핵의 위험성과 의사의 역할에 대해 동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핵기술의 발전은 문명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면 그것이 인류에게 끼친 해악도 깊었습니다.
『핵기술은 분명히 문명의 이기입니다. 그러나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해야 합니다. 일정한 선을 넘는다면 인간은 핵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유전공학과 마찬가지로 양면성이 있습니다. 히로시마(광도)와 나가사키(장기)의 원폭투하나 81년 미국 스리마일원전 방사능누출, 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원전 폭발사고 등은 핵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인 해악이 더 큽니다. 50년간 냉전이 지속됐던 것은 동서간의 체제문제보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의 위력때문이었습니다. 대립과 반목 속에서 무시된 인간의 존엄성 등은 계산할 수 없는 피해지요』
―우리 국민의 핵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판단됩니까.
『한마디로 이중적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함께 핵의 피해를 역사상 처음으로 체험한 민족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징용당한 한국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해방을 가져다준 선물이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또 주한미군의 핵이 한반도전쟁의 억지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발발해서도 안되지만 사용되는 무기도 중요합니다. 원전에 대해서도 고도성장 속에서 불가피 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잇단 방사능 누출사고로 위험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에 「질병의 역사」를 연재하는 등 임상의학보다 의학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학사는 어떤 학문입니까.
『의학사는 인류가 겪었던 질병, 환자와 의사들의 변화, 질병에 대처하는 정책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종합적 학문입니다. 의학의 인문과학이라고 볼 수 있지요.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점차 이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정덕상 기자>정덕상>
□약력
▲52년 경남 진해 출생 ▲77년 서울대 의대 졸 ▲82년 서울대의대 의학박사 ▲87년 영국 옥스퍼드대 약리학연구소 초빙연구원 ▲88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학술부장· 핵문제분과장 ▲92년 미국 UCSF의학사연구소 초빙연구원 ▲95년 녹색생명운동 기획위원 ▲85년∼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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