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출항 2년만에 40만명 가입 기적일궈/올해는 주문형비디오 서비스계획「젊은 PC통신」으로 통하는 나우콤은 선장 역시 젊다. 강창훈(41) 사장은 94년 4월부터 30대의 나이로 나우콤호를 맡았다. 나우콤이 적은 자본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선발 통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음의 패기와 미래를 내다보는 진보적인 안목을 겸비한 리더가 있었기 대문이다.
대주주가 덕산그룹에서 한창으로 바뀌는 동안 한때 위기설까지 나돌았지만 그가 지휘하는 나우콤호는 험난한 파도를 무난히 헤쳐 나왔다. 나우콤은 작년 28만5,000명의 가입자를 유치해 출항 2년만에 40만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모이는 PC통신사로 발돋움했다. 올해 목표는 가입자 58만명에 매출액 420억.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올해도 나우콤의 대약진을 예상한다.
강사장은 82년 부산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선경건설 해외사업부에 입사해 비즈니스맨으로 출발했다. 85년부터 90년까지 연합통신 국제부와 경제부 기자를 두루 거치면서 「정보」에 눈을 돌리게 됐고 넓은 인맥을 형성했다. 이때 연합통신 노조위원장을 했던 것도 그의 인생을 바꾼 큰 경험이었다.
PC통신과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때 연이 맺어졌다. 취재온 외국기자들이 지금의 노트북보다 조금 큰 랩탑 컴퓨터 하나 달랑 들고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기사를 작성한 뒤 본국으로 송신하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기자는 원고지에 글을 쓴 뒤 전화기를 붙잡고 하나하나 읽던 때였다』고 회상한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사 뉴미디어국으로 자리를 옮겨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을 만들었다. 그때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 삼성유니텔 남궁석 사장, 한경PC라인 우광호 국장 등으로 모두 정보한국의 쟁쟁한 리더로 자리잡고 있다.
강사장은 92년 케텔이 한국통신에 매각되면서 한국PC통신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덕분에 자본이 풍부해지고 몸집은 커졌지만 정보통신의 빠른 변화에 적응할만한 순발력은 차츰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자신과 생각이 같은 30명의 핵심멤버와 새로운 PC통신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주머니를 턴 빈약한 자본이지만 뜨거운 열정 하나만으로 만든 게 PC통신 나우누리다. 나우는 유니텔과 비슷한 시기에 기획됐지만 1년 앞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네티즌의 욕구와 의지가 채찍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나우누리 사용자의 의견을 듣기위해 매주 한번 정도 대화방에서 젊은 네티즌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또 게시판 곳곳에서 그가 올린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알려진 그의 ID로 수없이 보내오는 편지에 짧게나마 답장을 해준다. 그래서인지 네티즌들은 나우누리 분위기를 다정다감하다고 표현한다.
강사장은 올해 네티즌이 편안하게 나우누리를 즐기도록 서비스를 안정화하고 영상시대에 맞춰 주문형비디오를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PC통신이 TV를 대체할 미래를 미리 준비한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비디오와 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물을 지속적으로 디지털화하고 전화선을 통해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전송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이야기」 등 문자환경 접속프로그램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자료실과 게시판, 동호회포럼 등을 올해말까지 웹브라우저로도 볼 수 있도록 인터넷화할 계획이다.<송강섭·박형배 기자>송강섭·박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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