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저도 딸딸이 엄마거든요』내가 쓴 책의 독자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온 사람중에는 유난히 딸딸이 엄마가 많다. 생면부지인 그들이 수화기 너머로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떤 은밀한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설움을 겪고 있다는.
맏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됐을때 일이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정색을 하고 내게 물었다. 『엄마는 나 낳을때 기뻤어?』 『물론 기뻤지』 『엄마, 정말 고마워. 딸인데도 기뻐해줘서』
집에서 딸이라고 섭섭해 한 적도 없었고 자매 둘뿐이라 아들과 차별한 적도 없었건만 벌써 세상은 딸과 아들을 달리 대한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딸의 어깨를 안고 『엄마가 원한 것은 바로 너야.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너를 원한 것이었어』하고 좀더 자세히 말해주었다. 딸애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딸이라고 안 기뻐한다는 생각을 왜 했어?』하고 물었더니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딸이 말귀를 제법 알아듣는 다섯살부터 딸의 질문에 내가 아는 껏 자세히 설명해왔다. 이때도 나는 왜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은 무엇이 틀렸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때부터 나는 딸애와 가끔 놀이삼아 이런 문답을 주고 받는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바로 나를 낳은 것』
여성학 강사로 여러 곳에 초청강연을 다니다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중년부인들을 많이 만난다. 내가 우리 딸과 이런 문답을 주고 받는 것은 바로 차별이 심한 세상에서 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자긍심을 갖고 성장하길 바라서이다.
요즘 나는 재미삼아 「딸딸이」 운운하는 사람에게도 『딸딸이가 어때서요』하고 꼭 물어본다. 상대방이 우물쭈물하면 나는 딸의 좋은 점을 열거해준다. 유치해 보일수도 있지만 「딸」의 가정이나 주변 환경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달라져야 우리 딸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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