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일제시대 반은 해방정국/혼란스런 10년의 아스라한 기억 45점에 담아만화 같기도 하고, 습작 같기도 하다. 어설프고 촌스러운 그림. 왠지 낮추어 봐도 괜찮을 것 같은 그림. 민화.
40년대. 반은 일제 시대였고, 그 반은 혼란스런 해방기였던 근대사의 중요한 10년간. 감수성 많은 10대의 눈으로 그 세월을 기억했던 민화 화가의 작품이 소개된다.
「격동의 1940년대 회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고안 김만희 민화전이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내 현대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20호 내외의 작품 45점이 전시된다. (02)3467―6689.
「오간수교」는 40년대 청계천과 동대문 근처에 있었던 오간수 다리 주변의 풍경으로 동대문과 이화여대, 전차 차고가 보인다. 또 힘이 달려 언덕길을 올라가지 못하는 목탄차를 승객들이 차에서 내려 미는 풍경, 쌀창고 근방에 줄줄이 대기한 마부들, 해방 후 나오기 시작한 리어카 엿장수 등 이제는 아스라한 기억이 돼버린 당시의 풍속들이 기록돼 있다.
해방 직전의 풍경도 이채롭다. 「미군기 저공정찰」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45년 모내기 철의 풍경이 담겨있다. 그가 사범학교 2학년일 당시, 수업을 전폐하고 대전 근방의 논에 나가 모내기를 하고 있을 때, 미군의 B29 정찰기가 저공 비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모두 놀랐다. 그토록 저공비행하는 경우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대전 상공을 2, 3바퀴 정찰한 뒤 비행기는 사라졌다. 다음날 신문에선 「적기가 공습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고안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찰기가 사라진 뒤에나 공습 경보가 울렸다』며 당시 이미 일본의 패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은 자연풍속도가 많은 우리의 전통 민화와는 또다른 맛을 낸다. 미학적으로 보다는 지나간 시대의 기록으로서 느낌이 강하다. 「십이지신상도」같은 전통적인 민화가 그의 대표작으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조선시대 같은 지나간 역사에만 집착할 경우 민화가 대중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전시하는 45점의 작품을 합쳐 100점 가량의 작품을 「속 40년전」으로 전시하고, 「수난의 50년대」, 「약동의 60년대」 등 현대사를 민화에 담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가 당초 민화를 평생 업으로 삼고자 했던 꿈과도 상통한다. 대전사범학교를 나온 그가 교직 대신 돈벌이가 어려운 민화 그리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60년대 후반. 일본인 관광객들은 인사동을 훑어가면서 병풍, 촛대, 민화 같은 우리 전통의 물건들을 수집해갔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제대로 돈받고 그림을 팔아 본 적이 없는」이 화가는 30년을 민화 그리는 일에 매달려 왔다. 더욱이 지난 80년 백내장 수술이 잘못 돼 한쪽 눈을 실명한 뒤에는 좌절도 컸다.
그래도 요즘엔 꿈이 있다. 올해 서울시는 그를 민화부문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국가가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가 안된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공예가들이 독차지 해온 무형문화재에 그림 그리는 이가 선정된 것도 드문 일이다. 그의 꿈은 현대 풍속화를 마무리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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