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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비자금관리 어떻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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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비자금관리 어떻게 했나

입력
1997.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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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따로 출납 따로 로비 따로 “3각분담”/문제 생기면 장부폐기·직원 잠적 등 고리 끊어/진술증인 삼으려 「분신」 김종국씨 노출시킨듯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은 한보철강의 부도 이후 정·관계와 금융권에 대한 로비가 수사선상에 오를 것에 대비, 자신의 비자금을 핵심측근들 간의 역할분담을 통해 관리해 왔으며 본격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역할분담의 고리」를 와해시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를 토대로 「굵직한 자리」에 대한 로비와 로비자금 전달은 정총회장이, 비자금조성은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 중심의 재정팀이, 비자금용 현금의 은행입출은 가족인 조카딸 정분순(29)씨와 동생 선희(25·여)씨가 각각 분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역할분담의 3각고리」이다.

한보그룹의 돈줄을 관리하는 그룹재정본부의 책임자였다가 수사직전 계열사인 여광개발 사장으로 전보된 김종국씨는 정총회장 다음으로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지목되고 있다. 검찰은 「자물통」으로 불리는 정총회장의 무거운 입 때문에 김씨의 진술과 증거자료들을 확보한 뒤 역으로 정총회장을 압박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수서사건과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을 경험한 정총회장은 부도를 전후해 재정본부의 김대성(45) 상무와 서성하(40) 부장을 해외로 대피시키고 예병석(37) 차장에게 미처 폐기하지 못한 중요 서류 등을 뒷마무리한 뒤 잠적토록 조치했다. 따라서 검찰이 비록 김씨의 진술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한보측의 컴퓨터 디스켓 해독과 관련자들의 은행계좌 추적을 통한 제2의 물증수집을 병행, 정총회장의 입을 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김씨를 연일 검찰로 불러 조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각고리」의 한 축인 조카딸 자매는 회장실과 재정본부에 근무하면서 정총회장의 현금출납과 금융계와 정·관계 인사들의 연락을 도맡아 왔다. 특히 이들은 91년 수서사건 당시 정총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다 잠적했던 천은주(31)씨와 함께 수사착수 직후인 지난달 28일 일제히 행방을 감췄다. 검찰은 정분순씨를 출국금지조치하는 등 3명의 검거를 서울지검에 맡겼다.

한편 정총회장이 자신의 분신과 같은 김종국씨를 「적진」에 남겨둔 것은 정총회장의 치밀한 전략 중의 하나. 정총회장은 자신과 김씨가 입을 맞춤으로써 「의도된 진술」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의 진술에 대한 「내부 증인」의 역할을 시키기 위해 일부러 노출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김씨의 자백을 중시하면서도 그 자백에 「의존」하지 못하고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정총회장의 이같은 비자금관리방식은 수서사건과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을 겪으면서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 자신과 기업이 언제라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음을 느꼈던 정총회장은 「오른팔이 하는 일을 왼팔이 모르게 하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른 팔이 한 일을 왼 팔이 보증토록 하는」 이중 안전장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수사는 로비와 비자금의 귀재인 정총회장이 만든 「역할분담의 3각고리」를 어떻게 끊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정총회장이 입을 제대로 열거나 고리가 풀리면 정·관·금융계에 대폭발이 있게 된다.<김상우·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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