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악재 우려 돈 쏟아붓기 시작/우성이어 또 부도땐 선거에 엄청난 파장/4개 채권은행 외 2금융권도 대출 늘려5조원대의 금융부채를 안고 무너진 한보철강의 부도사태는 이미 지난해 4·11총선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한보철강은 이때 자체 자금력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는 사실상의 부도상태에 봉착해 있었다. 한보그룹 재정본부 예병석(현재 잠적중) 차장이 『한보철강은 작년봄 부도에 직면해 있었으며 채권은행들이 부도처리할 바에는 작년 봄에 했어야 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 빚으로 「제철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수조원대의 대단위 제철소건설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이 와중에 18개의 계열사를 설립·인수(93∼96년)하는 방만한 자금운영이 맞물려 한보철강은 95년 하반기부터 회생불능상태로 치달았다. 이때 철강경기마저 악화, 94년 493억원의 흑자를 냈던 한보철강은 95년 172억원 적자로 반전돼 지급불능상태에 달해 있었다.
정총회장은 「뇌사상태」에 이른 한보철강을 특유한 로비력과 무모한 추진력으로 생명을 이어갔다. 한보철강에 1차 자금위기가 닥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95년 6월 유원건설을 인수할 때였다. 정총회장은 유력한 인수후보자였던 대성산업을 제치고 빚더미 유원건설을 전격 인수했다. 이때 정총회장이 유원건설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에 지급한 돈은 한푼도 없었다. 오히려 유원건설의 부채를 떠안는 대가로 제일은행 등 채권은행으로부터 1,000억원의 보상대출을 받았다. 채권은행들은 인수계약 체결후 95년 12월 한보철강에 1,000억원을 대출해줬다. 몇개월후면 돌아올 금융비용을 제쳐두고 당장의 현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급전조달이었다.
불과 3개월후인 총선직전에 다시 시설대금 3,000억원의 결제시기가 돌아오자 한보는 벼랑끝에 섰다. 그러나 「때마침」 국내경기는 침체일로를 치닫고 있었고 1월18일 자산규모 1조8,000억원대의 우성건설이 부도를 낸 상태여서 한보부도는 한달도 남지않은 총선(4월11일)의 최대악재로 떠오를 판이었다. 이때 제일·산업·외환·조흥은행 등 채권은행은 3,265억원을 한보철강에 긴급수혈, 숨이 넘어가던 한보철강의 생명이 또다시 연장되었다.
그러나 뇌사상태였던 한보철강의 생명연장비용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총선전의 악수가 이어지면서 4개 은행의 한보철강에 대한 금융지원은 부도직전까지 1조9,128억원으로 증가, 95년말(4,332억원)의 4.4배로 늘어났다. 종합금융사 할부금융사 파이낸스사 등 제2금융권도 95년까지 한보대출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여신금액이 3,181억원에 불과했으나 총선을 분기점으로 한보대출이 급증, 물린 금액이 1조8,484억원으로 늘었다.
채권은행이 총선전 한보철강에 자금을 긴급지원했을 당시의 경제팀 진용은 나웅배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 구본영 청와대경제수석 등이고 금융관련 실무자는 이환균 재경원차관 김용진 은행감독원장 김영섭 재경원금융정책실장 등이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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