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의혹 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마구잡이 비난전에서 무차별 폭로식의 흙탕물 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민이 그토록 바라는 진상규명은 젖혀놓은채 「우리는 깨끗하다」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흠집내는 작태는 한국의 정치마당이 시정배들의 장터나 다름이 없을만큼 저급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아무리 장터라 한들 터무니 없는 얘기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몰지각한 행동은 하지 않는 일정한 규칙은 지키는 법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의 정치판은 말싸움과 폭로전만 계속할 것인가.
여야의 폭로전 중에서 무엇보다 국민을 경악케 한 것은 정태수 총회장과 금품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60∼80명 선에 이른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한국정계의 도덕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다. 여야는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의 설전이 정치와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명심, 중지해야 한다.
한보사건의 의혹은 4가지다. 사업승인의 경위, 5조원에 달하는 거액의 융자와 권력층의 압력여부. 이 과정에서 권력주변과 정치권에 대한 검은 로비자금 살포, 그리고 정씨가 사업자금의 전용 및 거액의 비자금 은닉 등이다. 이중에도 최대의 관심대목은 한보와 정치권의 유착으로서 국회는 스스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도 특조위를 서둘러 가동시켰어야 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있다지만 이번 진상규명에서 국회의 역할은 특별하다. 그러나 지금 여야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여야간의 저질폭로전은 야당이 청와대 주변인사들의 연루를 거론함으로써 촉발됐지만 결국 여당이 「눈에는 눈」식으로 두 야당의 핵심인사들을 지목, 반격하여 국민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다. 한심한 것은 이들의 폭로 내용들이 시중의 유언비어나 루머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여야 모두 책임감도 체통도 외면한채 설과 유언비어식의 정치로 정치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만 것이다.
물론 국민의 최대관심사는 이른바 검은 자금과 연루된 정태수 리스트다. 5년전 수서사건때도 대통령과 지목된 인사들이 극구 부인했지만 나중에 허위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경우 정태수 리스트의 진부를 가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질없는 흙탕물 싸움보다 국회특조위를 가동시켜 조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여야가 특조위 구성에 대한 이견으로 3일 국회소집을 무산시킨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다. 진상규명을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는 터에 당략에 얽혀 특조위 구성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국민은 여야 영수들이 한보사건에 대해 「한점의 의혹도 없도록 규명해야 한다」고 공언했으면서도 갖가지 조건 때문에 국회특조위가 지연되는데 분노를 느끼고 있다. 언제까지 체면건지기와 입씨름만 계속할 것인가. 그럴수록 민심은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야는 무조건 국회와 특조위를 즉각 가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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