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협상 난관에 또 ‘생떼카드’북한이 50만톤의 식량제공을 보장받으면 4자회담 참여를 긍정 검토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5일로 예정된 3자설명회에도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전달, 4자회담 성사여부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95년 4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공동제안한 이후 2년 가까이 각종 정치적 변수와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등으로 시달려온 4자회담 성사여부는 현재로서는 50만톤의 식량제공문제에 달린 셈이 됐다.
북한은 미국 곡물회사인 카길사로부터 식량 50만톤을 구매하는 협상이 벽에 부딪히자 3자 설명회 이전에 미국정부가 식량제공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혀 별개의 사안을 예정에 없이 연계시킨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북한식 카드」를 또 꺼낸 것이다. 구상무역 방식으로 진행된 카길사와의 곡물협상이 벽에 부딪친 이유는 워낙 식량난이 심해 곡물 50만톤은 즉시 받아야 겠는데 마그네사이트 등 대신 줄 물건은 전부 마련돼 있지 않은 탓으로 알려졌다. 카길사 입장에서는 곡물은 한꺼번에 주고 대금조의 물건은 수년간 나눠 받기가 불안, 식량 수출문제를 중단한 것이다. 카길사는 그러나 아직 협상이 결렬된 것은 아니라고 밝혀 여운을 남기고 있다.
3자설명회와 식량제공 연계에 대해 미국은 일단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과의 협의를 통해 당초의 약속대로 어떠한 전제조건없이 3자 설명회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카길사와의 거래를 미국정부가 보장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상거래에 개입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개입하고 싶어도 방법상 불가능하다는 쪽이다. 카길사에 미국정부가 지급보증을 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제안을 스스로 철회하지 않는한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5일의 3자설명회는 무산될 게 확실시 된다.
3자설명회가 무산되더라도 미국은 4자회담의 성사를 위해 50만톤의 식량제공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상투적인 억지연계의 방식을 쓰긴 했지만 4자회담 참여를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을 미국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식량 50만톤은 밀로 환산할 경우 1억달러어치다. 돈의 규모자체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한국과 중국 등 4자회담 참여자나 일본의 지원 등 국제적 분담방식도 고려될 수가 있다. 북한의 이번 제안은 역으로 식량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곧 닥칠 춘궁기에 대한 우려가 공포수준에 다다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식량이 절체절명이고 4자회담 등 정치적 사안은 종속변수로 바뀌고 있다.<워싱턴=홍선근 특파원>워싱턴=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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