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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의 방황’ 도래지가 바뀐다/국내 최대 도래지 천수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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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의 방황’ 도래지가 바뀐다/국내 최대 도래지 천수만 르포

입력
1997.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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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청둥오리·기러기·고니…/환경오염 심한 낙동강 떠나 새 보금자리 찾아온 30만∼45만마리의 화려한 군무/이젠 천수만·금강이 새 안식처로 그중엔 황새·혹고니 등 한때 사라졌던 희귀조가 보이기도/그러나 이곳도 오염 그림자 드리우는데 과연 내년에도 이 ‘겨울진객’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개발과 환경파괴, 수질오염 등으로 날이 갈 수록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이 줄어 들고 있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살기 편한」 곳을 원하는 철새들의 본능이 철새 도래지 지도를 바꾸고 있다. 낙동강 하류지역과 경남 주남저수지 등 「철새의 낙원」이 훼손되고 있는 사이 충남 천수만지역과 금강하구, 전남 순천만 등이 철새들의 새로운 안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올겨울에는 특히 금강하구 지역에 긴 철새도래지 벨트가 형성됐고 90년대 들어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자리잡은 천수만지역에도 잇달아 「겨울의 진객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천수만 안쪽 서산간척지의 인공담수호를 찾은 겨울철새를 30만∼45만마리로 어림셈하고 있다. 매년 천수만에서 철새 관측활동을 하고 있는 공주대 생물학과 조삼래 교수는 올 겨울 47종 40여만마리의 겨울철새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90년을 정점으로 계속됐던 급격한 감소세가 반전됐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절정기였던 89년에는 60만마리의 철새가 이지역을 찾았으나 담수호의 오염 등으로 지난해 20만∼30만마리까지 줄어 들었다.

올해 이 지역의 철새가 늘어난 것은 다른 지역의 환경파괴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될 뿐 철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새로 조성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들은 따라서 장기적인 수질오염 방지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이 지역도 곧 낙동강 하류지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철새들이 떼지어 몰려든 곳은 천수만 안쪽에 조성된 서산 A·B간척지의 인공 담수호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서 태안군 남면, 홍성군 서부면을 잇는 7.7㎞의 방조제가 84년 완공된 후 농경지 3,330만평과 담수호 1,387만평 등 모두 4,717만평(1만5,594㏊)의 국토가 새로 조성됐다. 바닷물이 서서히 민물로 바뀌면서 철새들의 서식에 유리한 조건으로 주변환경이 바뀐 덕에 이 지역은 국내 최대규모의 철새도래지로 떠올랐다.

지난달 28일 서산 B지구의 담수호인 부남호를 찾은 취재팀은 뜻밖의 진객을 만났다. 강원 북부의 화진포호나 송지호 등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석호에서 몇년전 모습을 보인 후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혹고니 한쌍이 카메라에 잡혔다.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지방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혹고니 한쌍은 청둥오리떼 사이에서 유유히 물살을 헤치고 있었다. 번식기가 되면 빨간 부리 위에 검은 혹이 돋아나는 이 겨울철새는 동북아지역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세계적 희귀조다.

경희대 생물학과 윤무부 교수는 혹고니가 나타난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윤교수는 『혹고니는 조개류와 수초가 있는 석호에만 나타났는데 그나마 개발여파로 몇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며 『4년전 속초 영랑호에 4마리가 찾아온 것을 목격했지만 북위 38도 이남지역에는 15년만에 처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륙쪽 호수에서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250여마리가 모여 있는 것이 목격됐다. 천수만이 여전히 국내 최대의 고니 서식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한의 날씨에도 물이 얼지 않은 곳에는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오리류와 물닭 등이 부지런히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A지구의 담수호인 간월호. 곳곳에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어 B지구보다 훨씬 많은 철새가 서식하고 있었다. 가창오리 청둥오리 고방오리 흰쭉지 넙적부리 등 오리류가 호수 중앙 곳곳에 수천마리씩 모여 있다가 릴레이식으로 비상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가장 큰 유천인 해미천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겨울철새들이 사람의 눈길을 피해 갈대숲이나 다리밑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8m너비의 해미천 빙판위에는 95년 이곳을 찾았다가 지난해에는 발길을 끊었던 황새(천연기념물 199호) 3마리가 취재팀을 맞았다. 세계적으로 2,000여마리에 불과한 황새는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무부 교수는 『황새는 수천년동안 러시아 한국 일본 등지에서 사람들에게 수모를 겪어 인적이 드문 곳을 선호한다』며 『이곳에 온 황새들은 95년 날아왔던 1쌍이 러시아에서 새끼를 친 후 다시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북아 지역에만 서식하는 가창오리와 혹부리오리 등도 호수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천수만은 3만여마리의 가창오리가 겨울을 나는 세계 최대의 도래지다. 담수호 안쪽 논에서는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이 떨어진 알곡을 주워 먹고 있었다. 또 철새들의 천적인 새매 3, 4마리가 기러기 등을 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최근 하수 유입이 늘어 담수호의 수질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것. 서산간척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A지구에는 현재도 서산시에서 흘러드는 청지천 등을 통해 다량의 생활하수가 유입되고 있다』면서 『하수종말처리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A지구와는 달리 B지구는 오염방지 대책조차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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