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만의 방사성 폐기물을 반입하는 계약을 맺고 금명간 운송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한과 대만 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한국으로서는 특히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사태다.우리가 핵폐기물의 한반도 이전을 방치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은 분명하다. 우선, 한반도가 단순히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5,000년 동안 우리민족의 터전이었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다. 긴 역사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인 우리가 이 시대에 와서 해외에서 들여온 「핵 쓰레기」로 한반도를 오염시킨다면 우리 앞의 세대나 뒤에 올 세대에게 면목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안되는 돈을 받고 남이 버린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북한의 이번 처사가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한다는 점은 핵오염의 치명적 위험에 비하면 차라리 소소한 대목이다. 북한 당국이 핵 폐기물처리 능력과 시설, 장비에 대한 국제적인 인증없이 이전을 강행한다면 당장의 핵 안전차원을 넘어서 두고두고 재앙의 씨앗이 될 우려가 다분하다.
북한이 지난해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 군사적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식량지원중단 등 단호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번에 핵 폐기물 이전이 현실화한다면 「국민들 마음에 그나마 남아 있는 동족사랑과 인도적 관심은 필시 사라질 것이며 이성적인 대화상대자로서의 자격조차 상실했다」고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북한은 이제라도 이전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대만 등 어떤 외국과도 이같은 거래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마땅하다. 이런 바탕위에 남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고 상호협조의 방도를 모색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떳떳한 일이 될 것이다.
통일문제나 남북한 관계는 정권의 바뀜과 관계없이 일관성을 갖고 꾸준하게 추진돼야 한다. 우리 국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초당적인 협력의 전통을 세워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북한측도 지난 50년의 경험을 통해 남한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대북정책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속임수나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합리적 대화에 나서는 것이 북한의 정권적 이익에도 부합할 것이다.
대만도 이번 사안의 본질적 성격을 잘못 보아서는 안된다. 북한과 정당하지 못한 거래를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가중시키는 길이며 대만 국익에도 도움이 안된다. 통일 이후의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느끼고 있는 대만에 대한 호의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대만측의 행동이 동양에서 중시되는 상호신의와 존중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환경오염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환경문제는 더이상 한 지역내에 국한되지 않는 지구적 차원의 중대관심사이기도 하다. 「환경보전」은 우리민족에게 절대명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환경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천천히 돌아봐도 좋은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생존과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선결조건의 하나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대한 지역협의체제가 남북한과 중국 대만 일본 및 미국 등 관련 당사국 사이에 수립되는 것이 긴요하다. 나아가 방사성 물질의 국제이동을 엄밀하게 감시하고 규제하는 장치에 대한 논의가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무대에서 더욱 활성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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