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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 좋은 시절은 다 갔다’(바닥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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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 좋은 시절은 다 갔다’(바닥증시)

입력
1997.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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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투자로 내돈 깨지고 잇단 분쟁 고객돈도 물어줘야/퇴직금받아 빚갚는 실정/퇴사후 택시기사 나서기도 최근 증권사 직원들은 스스로의 처지를 이렇게 곱씹는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증시가 장기 침체를 벗어 나지 못해 자신들의 꿈과 경제력이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데 대한 씁쓸한 자조인 셈이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서 폭발장세를 보였던 89년 50대 1 이상의 경쟁을 뚫고 입사했던 엘리트들이 빚더미에 눌려 객장을 뒤로 한채 택시기사나 막일꾼이 되고 있다. 심지어 빚독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까지 있었다. D증권 N대리의 말대로 『피비린내 나는 상황』 『대다수 영업직원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말 H증권의 K씨는 같은 회사 직장 동료의 보증을 섰다가 그 동료가 주식투자에 실패해 사표를 내고 나가자 고스란히 은행빚을 떠안게 됐다. 버티다 못해 자진퇴사, 퇴직금으로 빚을 털고 지금은 밤무대 가수로 일하고 있다. D증권의 Y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택시기사로 일하는 동료도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직원들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은 차명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주가폭락으로 「깨지는」 경우나 고객한테 위탁받은 돈을 날린 뒤 분쟁을 무마하기 위해 빚을 내 고객돈을 보전해 주는 경우다. 증권맨들은 대부분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하게 되는데 주가가 폭락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대출을 받아 재투자를 한다. 이때 주가가 상승하면 별 문제가 없으나 다시 폭락하면 개인적으로 부도상태에 이른다.

 고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 고객 돈을 대신 투자하는 「일임매매」는 증권거래법이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임매매시 사전에 고객과 서면계약을 해야 하고 그 내용을 증권거래소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식시장의 특성상 이 규정을 지키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침체장세가 장기화하면 고객과의 분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증권감독원이나 소속 회사가 직원 잘못으로 판정을 내리면 직원이 손실분을 고객에게 물어 줘야 한다. 설사 고객 잘못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직원이 일정부분을 보전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D증권 M대리는 『회사에서도 투자자와의 법정소송을 달가워 하지 않아 분쟁시 직원 자신의 돈으로 일정부분을 보상해 주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증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증권사 직원의 일임매매나 매매착오로 증감원에 제출된 민원은 250여건이다. S증권 K지점 L씨는 『드러나지 않은 분쟁이 1,300건을 크게 웃돌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지점이 평균 1, 2건의 분쟁에 휘말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무더기 분쟁과 「빚더미 증권맨」의 속출은 증시침체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D증권 L대리는 『현재 33개 증권사 1,056개 지점 가운데 「내집」을 갖고 있는 지점장은 30%도 안될 것』이라며 『내가 근무하는 곳의 지점장도 1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S증권 M지점 J씨도 『우리 지점 직원은 평균 1,00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 노조는 퇴직금 누진제 면에서 조합원이 불리한 「퇴직후 재입사」 규정을 회사에 요구해 사규에 집어 넣기도 했다. 증권노조협의회 오진아 전문위원은 『퇴직금으로라도 빚을 갚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직원들이 많은 것이 배경』이라고 밝혔다. 교보증권 신한증권 등이 현재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보증권 김창섭노조위원장은 『빚이 5,000만원을 넘으면 퇴직금을 받아 빚을 갚고 재입사하는 것이 오히려 금융비용면에서 이익이라는 판단이 섰다』고 설명했다.

 월급이 압류돼 생활비를 제대로 집에 가져가지 못하는 직원들도 많다. P증권 인사부 급여담당 K씨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대출보증을 섰다가 이자를 장기간 연체하면 월급 압류 신청이 들어 온다』며 『현재 우리회사에도 3명의 해당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버틸 사람은 버틴다. 언젠가는 주가가 다시 크게 오를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S증권 본점 P씨는 『한몫 잡을 것이란 기대감이 없으면 증권사에 남아있을 까닭이 없지요』라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감원태풍 온다” 안절부절/엎친데 덮친격 조직개편설까지 나돌아

 침체장세가 장기화하고 있는데다 「빅뱅」으로 불리는 금융개혁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증권사 본점 직원들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벌써부터 조직개편과 감원바람이 일고 있는 증권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증권사가 본점 기획부서 직원들을 대거 「위험한」 일선 지점 영업부서로 전진배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S증권 P대리는 『부서 통합에 따른 인력재배치와 감원 얘기가 나돌아 직원들이 불안해 한다』면서 『일단 태풍은 피하고 보자는 속셈에서 미리 다른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S증권 인력관리부장은 『당분간 의도적인 감원은 없겠지만 자연감소는 이미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지난해말 신규채용 인원을 6명으로 줄였는데 이는 재작년 50명을 뽑은 데 비하면 사실상의 동결이라는 것. 그는 다른 증권사들도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전했다.

 D증권 인사부장은 『지금 당장의 조직개편은 불난데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라 손을 못대지만 금융개혁위원회 활동이 본격화하면 조직개편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며 『금융계의 업무영역 조정으로 인력 재배치 차원에서도 조직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D증권 인사부장은 『신규채용인원을 계획보다 줄였다』며 『약세 시황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 뜨리고 증권사 취직 열기도 덩달아 떨어졌다』고 전했다.

 증권사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맨파워에 의존한다. 그래서 흔히들 증권영업을 「사람 장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증권사는 신규채용을 줄이는 예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대부분의 증권사는 신규채용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하거나 전년보다 줄였다.

 좋은 시절은 다 가고 증권맨들은 빚더미를 안은 채 금융개혁 태풍의 영향권으로 떠밀려 가고 있다.<이진동 기자>

◎여의도 룸살롱은 주가의 바로미터/활황기엔 증권맨으로 ‘북적’/장기침체여파 발길 뚝 끊겨

 여의도 E룸살롱 L마담은 요즘 하오 4, 5시만 되면 『주가가 바닥을 맴돌던데 화풀이 술한잔 하러 오세요』라고 단골 증권맨들에게 전화를 거는 게 일이다. 한창때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증권맨들의 발길이 뜸해진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 좋다」고 한잔, 떨어지면 「속상한다」고 한잔 하는 게 증권맨. 그러나 지난해 5월 이후 계속된 바닥 장세로 여의도 룸살롱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의 등락과 여의도 룸살롱 경기지수가 비례하는 셈이다.

 D증권 Y팀장은 『최근 자주 가던 룸살롱 마담으로부터 증시 장기침체가 걱정되겠다며 술 한잔 하러 오라고 권하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증권협회 P씨도 『종합주가지수가 1,007포인트까지 올랐던 89년에 비해 여의도 룸살롱이 줄어든 것 같다』 며 주가와 룸살롱 경기의 함수관계를 언급했다.

 증권사 직원들은 정보를 먹고 산다. 자연스럽게 밀폐된 공간인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속성이 돈씀씀이를 크게 하는 측면도 있다. 단 몇분 사이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벌고 잃는 일을 자주 겪다 보니 통이 커져 서민적인 술자리보다는 룸살롱을 찾게 된다. H증권 K대리는 『주가가 오르면 올라서 술을 마시고 떨어지면 화풀이 삼아 다시 술을 마시게 되지만 바닥 장세가 장기화하면 흥청망청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고 룸살롱 경기가 식은 배경을 설명했다.

 증권거래소에서 멀지 않은 M룸살롱 지배인은 『6개월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방 6개가 빌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하루 평균 4개 정도만 찬다』고 말했다. 한국노총빌딩 인근 H룸살롱 지배인도 『인근 H, L, D, S증권사 직원들은 1주일에 그저 한두번 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의도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룸살롱이나 룸카페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 K부동산중개소측은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룸살롱 매물을 찾기 어려웠는데 지난 연말부터 매물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권리금도 30∼50% 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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