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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속 증시’ 파산한 증권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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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속 증시’ 파산한 증권맨들

입력
1997.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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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헤매는 주가…/고객들 손해 메우기와 ‘깡통계좌’에 허덕이다 아차하는 순간 빚은 어느덧 억대/퇴직금 배가 넘는 대출에 회사도 그만둘 수 없다/월급은 이자로 다 나가고 하루하루 죽음같은 삶/차라리 감옥에라도 가고픈 파산한 인생… 파산한 꿈 H증권 서울 S지점의 L(34) 대리는 감옥에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것을 털고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 죽음같은 삶을 멈출 수만 있다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아내에게 알릴 수도 없고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려해도 퇴직금의 2배나 되는 대출금 때문에 사직할 수도 없는 처지다. 월급은 이자로 다 나가고 새로 빚을 내 아내에게 월급으로 전하는 「이중 생활」도 이제는 막바지에 이르러 머리속에서 시한폭탄 시계바늘이 째깍대고 있다.

 3, 4학년을 모두 A학점으로 채우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H증권에 입사한 89년 1월에만 해도 주위에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던 때였다. 덕분에 그해 결혼도 하고 지금은 아이가 둘이다.

 90년 「깡통 계좌」파동 때도 방어적 투자에 치중했던 그는 별 피해가 없었다. 이후의 침체장세도 그럭저럭 버텨 냈다. 신문에 인터뷰기사가 실릴 정도로 좋은 실적을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들어 주가가 곤두박질하면서 아차하는 순간에 빚더미에 올랐다. 손써 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빚이 1억원을 넘어 버렸다. 그전까지 조금씩 쌓였던 4,000만원의 빚은 어떻게든 털어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빚이 1억원을 넘자 그런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올들어 한때 주가가 꿈틀거리는 듯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호재가 없어 활황에의 꿈은 점점 아득하다는 느낌이다. 그저 『제발 제발』하는 마음 뿐 빚더미를 헤쳐 나갈 자신이 없다.

 우연히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 돈 700만원을 끌어 들여 주식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려 버린 것이 시작이었다. 미안한 마음에서 500만원을 빚내 친구에게 돌려줬다. 이 빚을 갚으려고 회사에서 1,000만원을 대출해 주식을 샀다가 날리고 말았다. 다시 대출을 받아 주식에 넣었으나 쉽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밤에는 노름을 했다. 그 또한 신통치 않았다.

 더욱이 깡통 계좌를 가득 안게 된 고객들이 손실의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걷잡을 수 없이 빚이 늘어났다. 거듭되는 성화에 몇천만원을 물어 내야 했다. 지난 연말에 손해를 본 고객들은 지금도 떼를 지어 몰려 와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피해액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고 있다. 어떤 고객은 칼까지 들고 와 『너 때문에 날린 내돈 물어 내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는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부산의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회사 주식을 사라고 해 급히 사들였다. 그런데 매입 직후 그 주식은 가격이 폭락했다. 5분뒤 부산의 고객이 다시 전화를 걸어 『아까 말한 그 회사 주식은 사지 말라』고 말하고는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 한건으로 2,400만원의 손실을 보았는데 그 고객은 절반인 1,200만원을 물어내라고 졸라 할 수 없이 물어 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같은 지점에 있는 동료들의 보증을 서 준 것만도 2억원이나 된다. 그들이 파산하면 보증인인 그도 파산이다. 동료가 제때에 은행에 돈을 갚지 못해 최후통첩을 알리는 전화가 몇 차례 걸려 왔다. 은행에 사정해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해 우선 급한 불을 끄고는 밤새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돈을 마련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짓도 곧 끝날 것같은 느낌이다.

 얼마 안 있어 월급 압류가 들어 올 모양이다. 아내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그동안 집에 갔다 준 월급이 닥치는 대로 빚을 낸 돈임을 밝힐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더 이상 빚을 낼 곳도 없고 설사 빚을 낸다해도 그 돈을 주식에 넣어 산더미같은 빚을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다.

 증권회사에 들어 온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입사동기 가운데 지점발령을 받은 13명중 3명만이 남았다. 다들 알거지가 돼 나갔다. 그러나 그만 둘 수도 없다. 퇴직금이 회사대출금을 메울 수 있을 때까지는.

 서울 여의도 D증권 본사에 근무하는 L(34) 과장. 87년 일류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그룹에 들어 갔다가 대학 선배의 권유로 H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6개월만에 5,000만원 넘는 돈이 손에 들어 왔을 때는 그 선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우리사주」를 1만3,000원씩 1,600주 배당받았는데 시장에 내놓았더니 주당 4만8,000원이나 나갔다. 이 돈을 한번 더 튀기자 금세 1억원이 됐다.

 맛을 들인 그는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 들기 위해 89년 2월 지점근무를 신청했다.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에 육박할 때였다. 자신의 돈은 물론 숙부를 비롯한 친척들의 돈까지 긁어 모아 주식에 투자했다. 불운은 느닷없이 찾아 들었다. 4월께 내리막에 접어 들더니 그해말에는 700선으로 빠져 버렸다. 자신의 돈 1억원은 물론 친척들 돈까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90년 5월 D증권으로 옮겼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점 근무 당시 한 아주머니의 주식을 관리했는데 각서를 써준 것이 화근이었다. 거액의 손실을 본 그녀는 몇년 동안 따라 다니며 『내돈 물어 내라』고 졸랐고 결국 4,000만원을 물어 주고서야 성화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2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던 그녀도 결국 이혼을 당했다.

 충격은 또 있었다. 국영기업 지방 지점에 근무하다 퇴직한 아버지가 퇴직금 1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려버린 것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집과 과수원까지 몽땅 털려 버렸다. 부자가 모두 주식으로 망한 꼴이 되자 참담했다.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서울 근교에 세를 얻어 사는 형편이다.

 지금 받는 월급의 거의 대부분은 5,000만원이 넘는 빚 이자와 원금을 갚는데 들어 간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직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지금은 아내가 번 돈으로 하루하루를 꾸리고 있다. 빚을 언제 갚으리라는 희망은 보이지 않지만 더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위하고 있다.

◎주식,투자인가 도박인가/기업 자금원 불구 단기차익 따른 도박성도 짙어

 시중의 여유자금을 주식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기업의 자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투자자들은 여유자금을 장래성 있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 이윤에 대한 배당을 받거나 약간의 시세 차익을 챙기는 것이 안정된 주식시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질서가 흔들리거나 거래 과정이 왜곡될 때는 문제가 생긴다. 주식시장이 「도박장」의 모습을 나타낼 때도 있다. 증권회사를 「공인받은 도박장」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다. 운이 좋으면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지만 자칫하다가는 알거지가 되기도 한다. 도박이 돈을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는 「제로섬」게임인데 반해 주식투자는 투자자 모두가 딸 수도 모두가 잃을 수도 있는 「넌제로섬」게임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주식투자는 도박에 가깝다.

 투자자 A가 4,000만원의 현금을 갖고 있으면 증권회사로부터 이 금액의 1.5배까지를 대출받을 수 있다. 즉 A는 모두 1억원어치의 주식을 살 수 있다. 그가 매입한 종목이 하루 상한가를 치면 8%까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800만원을 하루에 버는 것이다. 다음날도 상한가를 때리면 총액 1억800만원의 108%인 1억1,664만원이 되고 5일간 연속 상한가를 치면 총액은 1억4,700만원이 된다. 수익금만 4,700만원에 이른다.

 거꾸로 5일동안 연속 하한가를 기록할 경우 총액은 6,500만원으로 준다. 위탁수수료와 대출금 이자를 따지면 자기돈 4,000만원 가운데 남아 있는 돈은 500만원이 채 안된다. 며칠 사이에 원금은 거의 사라져 버려 텅빈 「깡통계좌」를 차고 앉게 되는 것이다. 4,000만원을 일주일 사이에 모두 날리거나 2배로 늘릴 수 있는 곳이 도박장말고 또 있을까.

 물론 주식시장이 정상적일 때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 투자를 촉진하고 이에 따라 고용이 느는 등 경제를 튼튼히 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러나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몰리는 시장에서는 그런 순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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