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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관계 유지속 파벌통합 나설듯/마스하도프 체제 체첸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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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관계 유지속 파벌통합 나설듯/마스하도프 체제 체첸 앞날은

입력
1997.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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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총리가 27일의 대선에서 의외로 1차투표에서 당선, 체첸은 대러시아 독립투쟁으로 와해된 국가체제를 재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 체첸대선을 초조하게 지켜본 러시아는 「최상의 시나리오」인 마스하도프 당선으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의 당선으로 지난해 8월말 서명한 러―체첸 평화안이 앞으로 큰 변화없이 양측 관계의 기본축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러시아는 사실 대선이 결선투표로 넘어갈 경우 강경 야전사령관 출신이자 기피대상 1호인 샤밀 바사예프가 당선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해 왔다.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임시대통령이 결선투표에서 바사예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해 그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마스하도프는 일단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 노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5년뒤로 미뤄진 러시아내 체첸의 정치적 지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방안을 하나씩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같은 작업이 체첸안팎의 정세로 볼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마스하도프가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는 독립투쟁 당시 각 파벌로 나눠진 무장세력을 하나로 통합, 국가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다. 특히 최대 반군세력을 이끌고 있는 바사예프 후보 진영을 끌어 들이는 작업이 시급하다. 바사예프는 선거전부터 타후보의 당선시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어 자칫 대러시아 독립투쟁이 체첸내 파벌싸움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업의 복구도 쉽지 않다.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로 변했으며 전기 및 가스공급도 여의치 않다. 러시아측이 체첸의 피해복구를 위한 예산을 따로 편성하고 있지만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 지는 의문이다.

체첸의 가장 큰 수입원인 원유 및 가스 채굴과 송유관의 복구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어서 당장 수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국민의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는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일도 난제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전사들의 미망인들과 부상자들의 지원요청을 외면하기 힘들다. 또 국외로 피란간 30여만명의 주민이 대거 체첸으로 돌아올 경우 주거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려운 평화협상과 선거과정을 거쳐 마스하도프 체제가 들어섬으로써 체첸사태는 이제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

◎마스하도프는 누구인가/러군 대령 출신 작전력 뛰어난 ‘은빛여우’/92년 반군합류 대러협상서 외교력 과시

아슬란 마스하도프(46) 체첸 대통령 당선자는 온건합리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가 강경파 야전사령관 샤밀 바사예프를 누르고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은 독립과 평화를 동시에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마스하도프는 첼랴빈스크 포병학교를 졸업한 러시아군 대령출신으로 92년 조하르 두다예프 전 체첸 대통령의 반군진영에 합류했다. 그가 러시아군 생활을 청산한 것은 번번이 장군진급에서 탈락, 소수민족의 설움을 절감했기 때문.

그는 빼어난 군작전 능력과 은발로 인해 「은빛여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마스하도프가 독립투쟁에서 차지한 군사적 역할은 러시아군도 존경심을 가질 정도였다. 장교 출신답게 러시아군의 전술교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그는 94년 그로즈니시 공방전과 지난해 8월 러시아군의 대공세를 각개격파 전술로 제압, 러시아를 협상테이블로 불러 앉혔다.

그는 지난해 말 알렉산데르 레베드 전 러시아 국가안보위 서기의 등장으로 본격화한 평화협상에서는 국면을 유리하게 이끄는 외교능력도 발휘해 정치가로서의 면모도 아울러 과시했다.

앞으로 그가 극복해야 할 난제는 전쟁만큼이나 벅차다. 선거로 분열된 국론통합과 함께 파괴된 경제건설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독립불허 정책과 체첸국민의 독립열망을 조화시키는 것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배연해 기자>

□체첸일지

▲91년 10.27=조하르 두다예프, 체첸공 대통령에 선출됨.

11.1=두다예프, 체첸 독립선언.

▲93년 4.2=두다예프, 체첸의회 해산.

▲94년 12.11=러군 4만명 체첸진입, 체첸분쟁 본격 개입.

▲95년 1.25=보리스 옐친 안보고문, 체첸공격 실질적 종료 선언.

6.14=반군, 러시아 남부 부덴노프스크의 한 병원에서 인질극.

7.30=러군 철수 및 반군 무장해제 골자 군사협정 체결.

12.17=도쿠 자프가예프, 친러시아 체첸정부 새지도자로 선출됨.

▲96년 1.9=반군, 다게스탄공 병원에서 인질극.

3.31=옐친, 체첸내 군사작전 종결 선언. 전투는 계속됨.

4.21=두다예프 피격 사망.

5.27=옐친-새 반군지도자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6월1일 휴전돌입 합의

8월=얀다르비예프―레베드 러 국가안보위 서기, 휴전조건 및 선거실시 합의.

▲97년 1.27=체첸대선, 총선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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