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금융부정사건이라는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28일 그룹 관련회사 사무실, 정태수 총회장과 네 아들의 자택 등 21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조만간 관련자들을 불러 본격수사를 벌일 것이라 한다. 최병국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수사 착수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다.김영삼 대통령도 이미 한보철강에 대한 사업인가와 대출 부도과정 등에 한점 의혹도 없도록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받아 정부 책임자는 대통령 주변까지 성역없는 수사를 하게 될 것이라 다짐했고, 여당 핵심간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말로 결의를 내보였다.
겉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로는 무언가 될 것같은 기대를 갖게 해준다. 그러나 시중의 공기는 『하는 체하다가 적당히 끝낼 것』 『정치사건 제대로 파헤치는 것 본 일 없다』는 등 냉소적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심지어 정총회장과 은행장 한두 사람, 관련 공무원 몇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는 것으로 수사가 끝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다. 야당이 우리 제도에 없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국회청문회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그 정도이다. 다른 사건은 볼 것도 없이 문제의 한보가 일으킨 91년 서울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때도 최고 권력자는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는 정총회장 등 8명 구속이었다. 배후라고 밝혀낸 사람이 당시 청와대의 체육문화담당 1급 비서관 한사람이었다.
그러다가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터져 정총회장이 노씨에게 거액의 비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그제서야 91년 검찰 수사가 왜 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났는지 알게 됐었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구속된지 얼마 안돼 병보석으로 풀려나 로비활동을 계속, 또 다시 이번과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지금 시중에는 젊은 부통령, 민주계 핵심 4인방, 야당총재 측근 등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온갖 루머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나 관련부처의 책임있는 사람들은 압력 행사를 부인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전·현직 관련 은행장들은 입을 모아 외압 때문에 무리한 대출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 전직 은행장은 『주무부처에서 외환 적격업체로 선정됐으니 대출해 주라는 공문이 내려와 할 수 없이 대출해 줬다』고 말했다.
수서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세월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고 얼버무리려면 수사를 안하는 것이 낫다. 이번에야말로 검찰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칫 부실한 수사는 더 큰 파장을 불러 올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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