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잠재운 ‘성실’ 그 오묘한 힘/현지 호텔시공 경험·신뢰 바탕/일 거대건설사들 물리치고 최첨단 ‘New K K 병원’ 수주/한치오차없이 내달 완공 큰 명성싱가포르 남부의 주거지역과 오피스타운을 잇는 「캄퐁자바」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다보면 도심 부근에서 아주 유서깊은 건물을 하나 만날 수 있다. 「싱가포르인의 요람」으로 불리는 「K K 국립병원」이다. 70여년의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산부인과 전문병원은 싱가포르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66년에는 한해동안 자그마치 4만명을 분만, 단일병원으로선 세계 최다 출산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적도 있다. 산부인과 분야에 관한 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 도시국가의 자랑거리이다.
이 병원의 주변에는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도로 건너편의 근사하게 생긴 현대식 건물이다. 캄퐁자바로를 사이에 두고 거울처럼 K K병원을 마주보고 서 있는 이 건물은 앞으로 K K병원의 소임을 잇게 될 새 병동. 이름도 「뉴 K K」다. 2월초 완공을 앞두고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 병원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게 되면 K K병원은 철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뉴 K K에 대한 싱가포르인들의 관심은 예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인들의 자존심을 상징할만한 이 병원이 한국 건설업체에 의해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타적인 화교상권의 중심부인데다 건축감독과 감리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싱가포르에서 80년대초부터 고급호텔 시공자로 명성을 쌓아온 쌍용건설이 그 주인공이다.
94년 싱가포르 보건부와 공공시설국이 발주한 뉴 K K 프로젝트는 지하 터파기와 기초공사를 일본국토개발공사(JDC)에서 시행한 까닭에 당초 일본회사에 연고권이 있었으며 싱가포르 현지업체를 포함해 10여개 대형건설사가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쌍용은 호텔건설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지마, 다이세이 등 일본 굴지의 업체들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했다. 쌍용은 당시까지 래플즈시티 복합건물을 위시해, 리앙코트, 인도어스타디움, 래플즈호텔, 하얏트호텔 등 싱가포르에서만 모두 20여개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으며 싱가포르 전체등록호텔 객실(2만5,322개)의 13%(3,370객실)를 시공, 호텔건설에 관한 한 어느 업체에도 뒤지지않을 만큼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병원공사는 시설이 복잡하고 첨단장비를 수용하는데 따른 설계변경도 잦아 고난이도의 건축기술이 집약적으로 요구되는 「건설공사의 꽃」으로 불린다. 계약금액이 1억3,600만달러에 이르는 뉴 K K 공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384개의 소아과 병상을 포함하여 834개 병상을 갖춘 뉴 K K는 지하 2층 지상 4층의 저층부와 십자형태를 한 9층짜리 타워 4개로 구성돼 있다. 건축연면적 4만6,000여평과 비교했을 때 1개 병상당 면적이 국내 일반병원보다 4∼6배정도 많다. 그만큼 첨단의료시설이나 편의시설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 건물은 싱가포르 최초로 스위스의 방위 규정을 적용, 전쟁시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시설을 갖추었을뿐 아니라 폭탄공격을 받더라도 주요시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특수설계됐다. 또한 중앙집중식 환자 모니터링시스템으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했고 환자들이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외부의 모든 창에는 알루미늄과 특수판으로 된 차양막을 설치했다.
쌍용건설측은 이 어려운 공사를 「공사관리의 전산화」를 통해 성공리에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귀띔한다. 쌍용은 이번 공사에서 처음으로 근거리통신망(LAN)을 도입, 발주처는 물론 협력업체와도 컴퓨터망을 통해 각종 파일을 공유하면서 도면의 작성 열람 수정 등 복잡한 업무절차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었다.
까다롭기로 치면 공사기술보다 더 한 것이 있다. 한치의 오차나 허점도 허용하지 않는 이곳의 엄격한 공사감독과 감리제도다. 뉴 K K 공사 현장소장인 양재건(47) 이사는 싱가포르에서의 공사를 「교과서식 공사」라고 말한다. 싱가포르는 설계와 조금이라도 다른 건물은 다 지은 것이라도 한순간에 부수는 나라다. 업자와의 「뒷거래」를 완전 차단하기 위해 공사관계자와 식사를 같이 하는 법도 없다. 양소장은 『대신 이곳의 감독기관이나 감리자는 불합리하게 일을 지연시키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일처리를 한다』며 『이것저것 신경안쓰고 성실시공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어 오히려 편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초국경 경영시대에는 「성실」만큼 중요한 덕목도 없다는 말로 들린다.<싱가포르=변형섭 기자>싱가포르=변형섭>
◎인터뷰/강복수 쌍용건설 해외사업본부장/배타성 강한 화교 상권중심지서/‘품질 최우선’ 모토 신뢰쌓아 성공
『우직할 정도의 성실함으로 화교상권을 뚫었습니다.』
쌍용건설 강복수 해외사업본부장(53)은 「궁즉통」이라는 말에 빗대, 성실하면 통한다는 뜻의 「성즉통」이 쌍용의 동남아 진출전략이자 철학이라고 소개한다.
동남아는 사실상 화교의 임차지나 마찬가지. 싱가포르를 포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동남아국가는 화교라는 거대한 자본가 집단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1인당 외화보유고가 일본을 앞지른다는 화교집단은 돈이 많은 만큼 외부세계에 대한 배타성도 강해 한번 교류를 트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강본부장은 『싱가포르는 91년 리관유 당시 총리의 발의로 제1회 세계 화상대회를 개최했을 만큼 화교의 영향력이 큰 나라』라며 『동남아 화교상권의 핵심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쌍용으로선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쌍용은 「품질 최우선」이라는 기업철학을 바탕으로 오로지 성실시공에만 몰두한 덕분에 화교사회에서 신뢰를 받게 된 것 같다』며 『80년대초 싱가포르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의 시공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적이 쌓여가면서 요즘에는 「쌍용」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현지인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실제로 쌍용은 외국업체로서는 이례적으로 87년 상업건물부문 최우수상(래플즈시티), 91년 공공건물부문 최우수상(싱가포르 국립실내체육관) 등 싱가포르 정부의 건설부문상(CIDP)을 3회나 수상한 경력이 있다. 유명세덕에 최근들어서는 오바야시구미 등 동남아시장을 개척하려는 일본의 주요 건설업체들로부터 협력제의도 잇따르고 있다.
해외건설분야에서만 10여년 근무한 강본부장은 『공사감독과 감리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싱가포르에서 건물을 지어본 회사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훌륭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며 남다른 자신감을 보였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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