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간 마을 수호신/수십개 유주 위엄 가득/84년 불로 밑동 타버려「벌교에 가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말이 있다. 한때 전남의 보성 승주 고흥일대 교통중심지였던 만큼 상업이 번창해 벌교에는 부자가 많았고 주먹센 사람도 흔했다. 하지만 벌교의 자랑거리는 이 것뿐이 아니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제90호)에서 해제된 「벌교의 은행나무」(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역시 주민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수령 600년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는 높이 40m, 어른 가슴높이의 둘레 10m의 거목으로 84년 불이나 밑동이 타기 전까지만 해도 매년 2가마 이상의 은행이 열렸다. 가을이면 온 마을을 뒤덮을 듯이 노오란 은행잎을 빗발처럼 떨구어 장관을 이루었다.
특히 이 은행나무는 가지에서 돌기한 유주가 신성과 위엄을 더해준다. 10㎝안팎의 굵은 촛대 모양을 한 수 십개의 유주는 유전적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돌연변이 현상으로 국내에서는 아주 드물다. 서울 성균관대 「문묘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도 잘 발달된 유주를 갖고 있는데 수나무라는 점이 벌교의 것과 다르다.
문화재위원을 역임한 임경빈 박사는 『은행나무를 신체로 삼아 올리는 제문 가운데 「당산지신에 고하나이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주시고 풍년을 내려주시고」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은행나무를 신으로 여긴 것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목은 대부분 이러한 신성 또는 영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임박사의 설명대로 벌교의 주민들은 음력 정초에 즈음하여 은행나무에 치성을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선출된 제관 이외에는 치성을 드리는 밤에는 일체 외출이 금지됐다. 이와 함께 지역 주민들은 가지를 다린 물을 해소병의 특효약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자식이 없는 부인은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 은행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84년 푸닥거리를 한 뒤 켜놓았던 촛불이 원줄기에 옮겨 붙어 나무의 상당부분이 타버렸고 훼손부위가 커 93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뒤 지방기념물로 보호 받고 있다.<이기창 기자>이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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