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항장을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예절로 포용하라』이는 옛 병법의 높은 지혜이다. 잠수함사건과 관련, 북한이 이례적으로 공식사과하고 4자회담 공동설명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진퇴유곡에 빠진 적장이 구차한 목숨을 비는 형상과 유사하다 하겠다. 측은하니 적장이 살아갈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북한은 신년사를 대신하는 당·군·청년보 등 3개지 공동사설에서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인간의 본능적 부르짖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경제적 밑천을 최대한 동원하여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겠다』 『쌀풍년, 고기풍년을 마련키 위해 들판을 대대적으로 조성하겠다』 『풀 먹는 집짐승을 기르는 사업을 전군중적 운동으로 밀고 나가겠다』 등 격정적 표현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체제붕괴위기를 스스로 감지했기 때문인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면서 『풀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나왔다. 어처구니 없는 맹세지만 오늘의 북한 처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케 한다.
극한상황에 처해 있는 북한이 4자회담 공동설명회에 참여키로 한 것은 그들의 저의가 무엇이든간에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 이유는 첫째 회담형식이 남북한 미국 3자 공동설명회여서 남북한의 정부급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북아지역 평화유지에 열쇠를 쥔 강대국 미국이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장에 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안전판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미국 참여하의 남북 당사자간 대화방식이 남북한 양자협상보다 훨씬 실효적이다. 물론 남한과의 직접대화를 배격해 온 북한이 북미 고위급 회담에로 진입하기 위해 남한을 중간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북 평화협정 제의를 반대해온 미국정부의 공식입장과 한미 양국 정상간의 공조관계로 보아 그러한 북한의 전술적 잔꾀는 성사되기가 어렵다.
두번째 의미는 한반도의 새로운 항구적 평화협정을 이룩할 수 있는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가 몇차례의 대화로 보장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설명회를 시발적 계기로 하여 남북한 당국이 김일성 조문파동 이래의 경색관계를 풀고 「화해와 협력의 전기」를 마련해 나갈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 점에 주목, 『한반도에서의 안정되고 항구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일은 한국민이 이룩해야 할 과제』라고 민족자결적 기본자세를 분명히 한 바 있다.
4자회담 공동설명회의 성공여부는 이제 진실로 평화통일을 실현코저 하는 민족의지에 달려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아슬아슬하게 전개되고 있는 주변 강대국간의 심상치 않은 세력각축전을 눈여겨 보면 지금이 바로 남북한간의 비인간적인 냉전장벽을 제거하고 평화통일의 대장정에로 나서야할 때임이 분명하다.<통일문제연구가>통일문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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