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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경제와 과소비의 끝/허신행 한국소비자보호원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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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경제와 과소비의 끝/허신행 한국소비자보호원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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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0일 모교수의 부인(40)은 자신의 신용카드 거래대금과 대출금 등 2억6,000여만원을 갚을 능력이 없다며 국내 처음으로 소비자 파산선고를 신청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절제 없는 과소비의 끝이 어떤 것인가를 보는 듯해 우리 모두를 뒤돌아보게 한다.일본에서는 거품경제가 풍선바람 빠지듯이 가라앉기 시작한 92년 이후 소비자 파산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95년 한 해 접수된 소비자 파산 접수건수만 해도 4만건을 넘어섰다. 경제성장에 따른 풍요로운 사회의 병폐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드러낸 단면이다.

우리나라라고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갈 길이 아직도 먼 나라에 속한다.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15년 이상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웬 샴페인을 미리 터뜨리고 3D업종을 기피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과소비에 젖어들어 분수에 넘친 해외관광이나 유흥산업으로 흥청거리고, 부도덕한 놀이문화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바뀐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생산성 향상보다 부동산투기에 매달리고, 창의력 발휘보다 임금인상에 치우치는 분위기마저 고조된다. 해외개척을 위한 협동보다 내부갈등으로 아까운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자마자 노동법개정으로 빚어진 집안싸움이 파리로 옮겨지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나라경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고비용-저효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도 경제난국을 돌파하기 어려운 때 자기 몫 찾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소탐대실한다면 결국 우리 모두가 패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럴 때가 결코 아니다.

세계가 파동치듯이 바뀌고 있다. 지구촌의 통합으로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잠시라도 머뭇거리거나 한눈을 팔면 낙오된다. 이런 시기에 내부갈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왜 멀리 내다보지 못할까. 국가와 민족의 장래보다는 집단과 개인의 이익에 더 매달릴까. 대화보다는 감정을 앞세우고, 타협보다는 투쟁을 선택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물론 좁은 땅덩어리 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마찰과 갈등이 일어날 환경적 소지는 있다. 단일민족이라 평등의식이 강할 수도 있다. 오랜만의 민주화과정이라 말이 많을 수도 있다. 모처럼의 경제부상이라 소비도 좀 늘릴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소득 1만달러는 3만달러로 향한 첫 계단이요, 29번째로 OECD에 가입한 우리는 선진국중 제일 막내둥이이다. 성년식을 치른 우리에게는 이제부터 독자적인 힘에 의존해야 하는 불안한 항해가 있을 뿐이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 나라는 개도국의 껍질을 벗고있다. 선진국을 모방하는 시대도 지났다. 남의 보호없이 우리들의 독자적인 힘으로 서야하는 어려운 고비에 처해있다. 힘을 합해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면 선진국 출항은 커녕 후진국의 뒷자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 모두가 좌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우리들의 분수를 알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장수의 비결은 과식이 아니라 소식이다. 창조의 비결은 싸움이 아니라 관용과 용서 그리고 무심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것들, 돈과 권력 명예 등은 모두가 허상이요, 헛된 꿈일 수 있다. 갈등과 대결의 구도를 깨고 의식의 대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OECD로 가는 선진국의 문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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