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지 부산서 결혼식 주례후 써주신 시/이땅의 사랑하는 남녀에 보내는 축하의 시 같아「결혼식」이란 시는 일석 이희승 선생님께서 52년 8월26일 피란지 부산에서 올린 우리 내외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시고 쓰신 것이다. 이 시는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던 종합지 「자유세계」 12월호에 발표된 뒤 그분의 두번째 시집 「심장의 파편」에 실려있다.
나는 중앙중학에 다녔고 부친(월봉 한기악)도 그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 2학년 때 우리 부자는 중앙중학교 대선배인 일석 선생님의 특강을 처음 듣고 감명을 받았다. 그때 선친은 신문사경영에 실패, 인촌 선생의 배려로 중앙중학에 근무하셨다. 조그마한 체구에 민둥머리로 국민복인가 하는 카키색 양복을 입으신 일석 선생님이 일어로 「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한 조선문학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셨다. 지금은 초등학교생도 아는 내용이지만 일제에 의해 까막눈과 귀머거리가 된 우리들이 강의를 듣고 받은 충격과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부산에서 현민 유진오 선생이 부모를 일찍 여의고 빈 주먹뿐인 나에게 큰딸을 내어주시어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나는 현민 선생과 상의해서 양가를 잘 아시고, 대선배이자 스승이신 일석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기로 했다. 선생님을 찾아 뵙고 말씀드렸더니 아주 반가워하시면서 선배의 아들과 친구의 딸이라 자여질(아들과 조카) 같이 생각하신다면서 쾌히 승낙하셨다. 주례를 하시면서 긴장하신 나머지 신랑과 신부의 성을 바꿔 부른 촌극이 있었지만,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을만큼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셨다. 녹음시설도 비디오도 없던때라 그 장면을 담아 놓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얼마뒤 신문광고에 난 「자유세계」의 광고를 보니 「결혼식」이란 선생님의 시가 있기에 단숨에 책방으로 뛰어가 사서 보았다. 말미에는 나의 결혼식 주례를 서시고 쓰신 시라고 적혀 있지 아니한가? 놀라움과 감격으로 신혼초인 우리는 시를 외우면서 밤새는 줄 몰랐다. 이 원고를 쓰기로 하고 그때의 일기를 보니 젊은 내외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한 기록이 새롭다.
아내의 환갑때 고 천관우 선생의 부인 최정옥 여사께서는 백자항아리에다 이 「결혼식」전문을 써넣어서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이 항아리를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감상한다.
「결혼식」이란 시는 나의 결혼식이 계기가 됐을 망정 우리나라 애정시 중에서도 손꼽힐 작품이다. 나는 「결혼식」이 선생님께서 결혼하는 이 땅의 젊은 남녀 모두에게 보내시는 축하의 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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