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에서 공부를 해본 사람이면 한번쯤은 겪게 되는 혼란스런 경험이 있다. 주로 학기말, 맨 마지막 시간엔 어김없이 이 「혼란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이름하여 「평가(Evaluation)」라는 시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자는 것인지 대개의 경우, 시험지같은 설문지를 받고 나서야 그 의도를 알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시험문제보다도 문항수가 깨알같이 더 많고 대답하기가 까다롭기조차 하다.한 학기가 끝나면 학생이 가르침을 받은 교수를 소위 「평가」하는 제도이다. 어릴 적, 옛날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느니, 군사부일체였느니 하는 유교식 도덕강의가 귀에 익은 한국학생으로서는 「이것이 소위 문화충격이라는 것이구나」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평가」를 위해 학생들에게 건네진 설문지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항들이 적게는 10여개항에서 많게는 20여개항이 담겨 있다. ▲당신을 가르친 교수가 수업시간에 맞춰 나타나고, 또 마칠 때도 시간을 잘 지켰느냐 ▲강의준비는 잘 돼 있었느냐 ▲당신의 질문에 만족스럽게 잘 대답해 주었느냐 ▲예고없는 결강이나 무성의한 강의는 없었느냐 등등.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국학생들의 경우,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듯 설문지의 한 문항 한 문항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성의있게 작성하더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작성된 결과는 학교당국의 교수 「평가」 자료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예컨대 그 교수가 전임이 아니었다면 전임(Tenure)이 되는데, 혹은 주요 보직을 맡는데 그 「평가」는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지난 22일 이화여대는 97학년도 정례인사위원회에서 학술연구 결과 부진 등을 이유로 심사대상 교수 180여명중 3명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고 한다. 대학도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이제 부단한 자기성찰이 불가피한 시대에 왔다는 증거다. 수십년은 됐을 법한 누렇게 빛바랜 강의록으론 더 이상 대학에 설 땅이 없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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