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을 처리하는 데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수조원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투자자금을 헛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돈은 은행의 것도 아니고 정부의 것도 아니며 나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한두푼도 아니고 4조, 5조원을 넘나드는 거대한 재원이 일개 기업의 단순한 오판이나 은행의 관리태만, 또는 정경유착의 검은 의혹에 휩싸인 채 허공에 날아가 버리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주인이 누가 되든 또는 경영을 누가 맡든 일단은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을 시켜서 이왕 퍼부은 돈이 헛되지 않도록 한푼이라도 건지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채권은행단이 한보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급한 불을 먼저 끈 다음 제3자 매각이나 공기업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보는 것이 문제해결의 순서라 하겠다.
원칙으로 말한다면 당장 부도를 내는 것이 옳은 태도겠으나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입게 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출손실과 전체 국민경제에 미칠 충격적인 파급영향을 생각하면 앞일이 걱정이다.금융개혁의 수술대 위에 올라 있는 은행들이 또 대규모 부실대출의 회오리에 휘말려 들게 된 것은 실로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한보가 5공, 6공 때 계속해서 말썽을 일으켜 온 문제기업이고 그 재무구조가 어떻다는 것은 정부 관계자나 은행임원이 아니더라도 일반 국민들까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이런 기업이 어떻게 해서 1년새에 여신잔액을 60%나 늘리면서 5조원이 넘는 돈을 무제한적으로 갖다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정부 당국과 은행관계자들은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정차원에서 금융지원의 배경을 조사하라는 야당의 요구도 나왔지만 금융계와 업계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업전망과 재무구조가 뻔한 기업에 5조원이 넘는 돈이 나갔는데 그것을 은행이 자율적으로 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1조원에 가까운 거대한 자금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대출을 하면서 당국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는 것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얘기다.
한보문제의 처리는 우선 첫째로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을 시킨 다음, 두번째로 매각과 공기업화 등 경영을 정상화시키면서 새 주인을 찾아 주고, 셋째로 정치적인 배경과 외부압력 등 일련의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서 두고두고 말썽의 불씨가 남지 않도록 뒷마무리를 잘하는 순서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특히 산업은행 등 이 일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온 관계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그 경위를 물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도록 해서 불씨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한보의 경우는 대출부조리가 정경유착으로 연결돼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화된 전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많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