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무역적자 눈덩이… 그나마 핵심기술은 ‘하늘의 별따기’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는 지난 30여년간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에 힘입어 양적으로 비약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지난해 국민총생산(GNP)대비 연구개발투자가 2.6%로 선진국 수준이며 투자규모면에서도 세계 10위권 이내인 100억달러에 이르렀다.
연구원 수도 10만명을 상회, 영국 및 프랑스에 근접했다. 이같은 외형적 지표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력이 마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거나 적어도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기술력은 외형처럼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소에서 발행한 96년 국제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력이 46개국에서 25위를 차지했다. GNP와 무역량이 각각 세계 11위, 12위인 것에 비하면 과학기술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또 기술개발력의 경우 미국을 100으로 할 때 우리나라는 27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은 127, 일본 113, 프랑스는 98점을 받았다. 이 수치가 바로 우리나라 기술력의 현주소다. 몸집은 성인수준으로 커졌지만 머리는 어린이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속 빈 강정」과 같다는 사실은 기술도입 및 기술수출에서 한 눈에 알 수 있다. 95년에 기술을 도입하면서 해외에 지불한 로열티는 무려 19억4,700만달러에 달했다. 94년(12억7,656만달러)의 1.5배 수준이다. 85년 2억9,550만달러, 90년 10억8,700만달러에 비교해 보아도 기술수입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95년 우리나라의 기술수출은 123건으로 액수는 1억1,238만달러에 불과, 기술무역수지 적자폭이 18억3,462만달러에 달했다. 94년 적자폭 11억6,568만달러에 비해 57.4%나 늘어났다.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93년 9억130만달러, 92년 8억1,813만달러로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기술도입의 경우 미국에 지불한 돈이 9억6,200만달러(49.4%), 일본에 6억9,480만달러(35.7%)로 기술 수출입이 이들 두 나라에 크게 편중돼있는 것도 특징이다.
기술역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을 모두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많은 돈을 외국에 쏟아붓고 있지만 첨단 핵심기술분야를 들여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한 연구원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양산업으로 기울어진 기술은 쉽게 이전해주지만 상승가도를 달리는 기술은 막대한 돈이 아니면 이전을 기피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관련, 프랑스의 고속철(TGV)를 도입키로 하면서 프랑스에 거금을 지불해야 하고 99년 쏘아올릴 예정인 다목적 실용위성 개발을 위해 미국 TWA에 수억달러를 줘야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차세대반도체 우주항공 생명공학 신소재 등 미래산업분야는 더욱 민감하다. 우리나라 연구소가 공동연구를 제안해도 외국은 피하기만 한다. 첨단기술 누출을 우려해서이다.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항공기엔진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일부 분야에 대한 연구를 착수했지만 선진국의 냉정한 외면으로 도중하차한 사례도 있다.
이같은 현실은 첨단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갈수록 국가간의 기술장벽이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나라의 첨단기술력 낙후는 제품의 경쟁력 퇴보로 이어져 산업에 악영향을 미쳐왔다. 한국산이라면 외국인들이 우선 「싸구려」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첨단기술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에서 첨단제품을 만들어도 막대한 로얄티를 지불하고 나면 껍데기만 남아 실속이 없는 것도 한 단면이다.<선년규 기자>선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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