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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 열풍/“믿을건 실력뿐” 너도나도 공부(한국의 30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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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 열풍/“믿을건 실력뿐” 너도나도 공부(한국의 30대:4)

입력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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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정리해고 불안속 배움만이 살 길”/컴퓨터·외국어학원서 대학원·방송대까지/새벽에… 퇴근후에… 줄잇는 넥타이 부대30대의 늦공부바람이 거세다. 기업의 사원연수 프로그램이나 컴퓨터·외국어 등 사설학원에는 젊은 넥타이부대가 줄을 잇는다. 야간대학원이나 방송대, 검정고시, 독학사시험에서도 30대의 비중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이다. 배움에 나이가 없는 만큼 30대의 「만학」 또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데서 오늘의 30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과 극복의 치열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30대가 공부에 몰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고 이를 개척한 것이 40대이상 기성세대라면 이미 반석 위에 서 있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며 이들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은 30대의 몫이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실력 밖에 없다. 연공서열에 의한 승진제도가 사라진 일터에서 실력이 없으면 도태하기 때문이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30대는 실력위주의 기업문화를 처음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30대는 전방위적인 재능으로 무장한 20대나, 이미 조직내의 가능성과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40·50대와는 배움의 동기나 열의에서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현대그룹문화실에서 일하는 하곤철(30)씨는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시대에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실력 밖에 없다』며 『세계화는 곧 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무가 끝난 저녁 6시부터 2시간동안 그룹별관사옥에서 실시되는 컴퓨터교육을 받고 있다.

삼성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승진심사에서 인사고과 비중이 가장 크지만 사내연수에서의 외국어점수나 토익점수도 중요한 평가요소』라며 요즈음의 직장분위기를 전했다.

LG그룹연수원 「인화원」의 김동찬(40) 부장은 『13주과정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매년 선발되는 300명의 사원중 80% 이상이 30대 대리·과장급』이라며 『탈락한 사원들의 상당수는 자비로 어학교재 등을 사서 별도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N은행 대리승진시험을 준비중인 강모(37)씨는 『요즘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집에서 잠자는 시간과 거의 맞먹는다』며 『입행이 늦은데다 승진도 더딘 편이어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굳이 승진목적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다시 책을 잡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계열사인 광주 A전자의 최모(34) 대리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현실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너무 많아 약 4개월전부터 컴퓨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최씨는 『직장에서 컴맹으로 찍혀 좋을 게 없다. 요즘 직장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항상 주위에 물어보면서 버틸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것은 말 그대로 취직시험을 위한 것일 뿐 막상 직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별로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씨의 말처럼 30대가 대학을 다닐 때의 캠퍼스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취업난이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았지만, 시위로 날을 새던 당시의 대학분위기는 장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할 수 있을 만큼 한가롭지도 못했다.

H제지 기획부서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모(36)씨는 『직장내 20대 후배들은 외국어나 컴퓨터가 기본인데 반해 우리 또래 동료들은 전혀 준비없이 직장에 들어왔다』며 『부장급 이상 선배들이야 후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신용카드사 대리 김모(37)씨는 「직장장학금」을 받아 동국대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과정을 이수한 케이스.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고 이 곳에서 근무중인 그는 『전문지식의 필요성도 있었지만 학창시절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게 아쉬워 야간대학원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대학졸업장이 없는 30대들은 직장에서 요구하는 직업교육을 받으랴, 뒤늦게 대학공부를 하랴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방송대, 검정고시, 독학사시험 등이 매력적인 돌파구이다. 한국방송통신대가 지난해 4월 조사한 재학생 연령별 분포에 따르면 1학기 등록자 총 21만5,000여명 중 30대가 29%인 6만3,000여명으로 매년 30% 정도의 고정적인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독학사나 검정고시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대기업생활을 거쳐 충무로에서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방모(38)씨는 학력의 벽을 실감했다며 방송대를 졸업하고 올해부터 야간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실력보다 학벌이 수주의 단가를 결정하는 학벌위주의 사회관행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공부만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 생계부담이 줄면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새 출발하는 방편으로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S그룹 K영업부서에 2년간 다니다가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93년 사표를 쓴 윤주영(31)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뭔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만학동기를 밝혔다. 올해 사시에 합격한 윤씨는 『막연한 장래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굶기야 하겠느냐」는 오기로 사법시험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30대의 고시열풍은 정부의 국가고시 합격자 연령별 분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총무처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고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사법시험의 경우 86년 총합격자 300명 중 30세 이상은 43명(14%)이었으나 95년에는 308명중 72명(23%)으로 늘어났다. 총무처 관계자는 『30대이상 고령합격자의 숫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의 홍주환씨는 『사회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우리 사회의 허리격인 30대가 느끼는 부담도 클 수 밖에 없다』며 『삶의 질이라는 보다 나은 가치와의 조화와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어느 방송대생의 하루/직장다니며 전문대·방송대 진학/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강행군/집­병원­학교로 쉴틈없는 나날/“그래도 난 배우는 것이 즐겁다”

「식스 투 일레븐(6-11)」 부천성가병원의 임상병리사인 김성신(여·34)씨의 하루는 빡빡하다. 거의 쉴 틈이 없다. 아침 6시, 깊이 가라앉는 몸을 추스려 일어나면 주경야독의 하루가 기다린다. 김씨의 큼직한 가죽가방엔 전공과목책 2∼3권과 일어 회화책 및 녹음기, 테이프 등이 빼곡이 차 있다.

김씨는 직장경력 15년의 베테랑의료인이면서 방송대 보건위생학과 2년인 햇병아리 대학생이다. 여고를 졸업한뒤 여러 사정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것이 83년. 그 때부터 성가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씨는 다시 공부를 시작, 전문대를 졸업(90년)했고 33세때인 96년 방송대에 입학했다. 만학의 열정 때문인지 아직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아침 6시45분. 마을버스를 타고 4호선 미아삼거리역으로 나간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 타고 역곡에서 내려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아침 8시. 전철 안이 덜 복잡하거나 자리가 비면 책을 꺼내 공부한다. 피로가 몰려올 때는 『이 놈의 공부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참기 힘들다.

하오 5시까지 혈액검사 등 10여년간 이력이 붙은 일을 하지만 하루하루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남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애인을 만나러 가는 시간, 김씨는 특강을 들으러 대학로에 있는 방송대로 등교한다. 20∼30분쯤 퇴근이 늦는 날이면 늦을까봐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학생회관 강의실에서 외부강사가 보충수업격으로 실시하는 산업위생학 특강을 듣는다. 특강일은 화요일과 금요일. 월요일 저녁때는 8명으로 구성된 스터디 팀에서 공부를 한다. 졸음이 몰려오지만 뒤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는다.

방송수업도 있다. 저녁 9시부터 교육방송(EBS) 라디오에서 나오는 수질관리나 산업위생학을 들어야 한다. 상오 5시에 시작되는 과목도 있지만 김씨는 새벽 방송수업은 1주일쯤 뒤 학교에서 녹음테이프를 사서 듣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 학기에 3일 가량 되는 출석수업과 중간·기말시험 때문에 18일쯤 되는 연차휴가의 절반을 써야 한다.

서울 집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 파김치가 다 된 딸의 모습에 어머니는 『시집은 안 가고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니』라고 걱정반 질책반의 잔소리를 하지만 대학원에까지 진학하겠다는 김씨의 향학열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김씨는 승진하기 위해서나 남들처럼 공부못한 게 억울해서 대학졸업장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직장생활하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힘들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1학기때 4.0 만점에 2.7점을 받은 김씨는 2학기 성적은 3.0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증가하는 30대 방송대생/신입생의 30% 육박/회사원·공무원 많아

전국 21만5,000여명의 방송대생중 30대는 6만2,000여명(96년 기준)으로 29.2%다.

물론 20대가 59.3%(12만8,000여명)로 가장 많다. 하지만 90년대 들면서 30대 신입생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92년 24.0%였던 30대 신입생비율은 해마다 1%가량씩 늘어 이제 3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신입생 기혼자도 많아져 93년 22.5%에서 96년에는 34.2%에 달했다.

신입생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것도 두드러진 추세다. 93년 25.2세였던 신입생 평균연령은 94년 26.2세, 95·96년에는 27.1세까지 높아졌다. 평균연령의 상승은 40, 50대가 아니라 30대 신입생 증가에 따른 현상이라고 대학측은 분석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30대 방송대생의 직업별 분포는 회사원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공무원 교원 주부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0대 만학열풍에 대해 방송대 학생생활연구소의 구재옥 교수는 『결혼연령이 높아지는 등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고령화현상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자아실현욕구는 강한 반면 지위불안은 갈수록 커지는 30대의 특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윤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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