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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명희 도서출판 소화 편집부장(내 아이 이렇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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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명희 도서출판 소화 편집부장(내 아이 이렇게 키운다)

입력
1997.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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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 잘된 집은 경쟁상대가 아니다”며칠전 일이다. 오랜 만에 대청소를 하다가 밤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이 난데없이 『당신은 창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인가 봐』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언젠가 남편이 식탁에서 한 말이 생각나 몹시 분했다. 『이상하게 창의적인 사람들 중에 뒤죽박죽 정돈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군』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10년만에 귀국했을 때 우리는 친구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나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 비슷비슷한 소파 그림 주방기구는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너무나 깔끔했기 때문이다. 사방 수납공간에 장난감과 책이 빽빽히 꽂혀있고 거실 한 쪽에는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어노는 트램펄린이 놓여있고 서랍장 위마다 실험용쥐며 거북이집 어항 귀뚜라미집이 있던 우리집과는 너무 달랐다. 게다가 우리집에 다니러오신 가까운 친척까지 『성격도 좋지, 어떻게 그렇게 냄새나는 동물들을 키워? 좁은 집에서…』하는 정체모를 칭찬에다 어쩌면 아이들까지 『누구네 집은 참 깨끗해』하면 살맛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치사하지만 자구책으로 다른 집들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동물을 엄청 좋아한다는데 어항의 물냄새가 싫어서, 흙을 흘릴까봐서, 애들이 물고기도 화초도 키우지 못하는 집. 「그 집은 나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애들이 다룰 수 없을 것이 뻔한 대형수족관이 화려한 집, 완제품 장난감이 대부분인 집, 아이 전용의 진짜 연장도구가 없는 집, 엄마와 함께 만든 못난이 헝겊인형이 없는 집… 「그런 집들도 나의 경쟁상대가 아니다」이런 식으로 정리해보니 기 죽을 것까지는 없었다.

기저귀를 차던 딸애가 놓치는 바람에 내가 무서워서 울며 잡으러다니던 흰쥐부터 『우리 블랙키 여기 묻히다』라는 비문과 함께 집 뒤에 묻어준 마지막 까만쥐까지 42마리의 실험용쥐들을 4대에 걸쳐 큰 아이는 키우고 실험일기를 썼다. 가을이면 암수를 용케 골라 흙 묻은 손으로 잡아온 수놈귀뚜라미의 밤마다 울던 소리며 해부용이라고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손톱만한 죽은 개구리를 보고 지르던 내 비명소리… 우리 아이들은 이런 속에서 자랐다.

오랜 만에 만난 부인네가 물었다. 『그 큰 아이, 과학고 갔지요?』 『아니요, 국어가 모자라서 원서도 못 냈는데요』 그러자 물정 모르는 딸애가 옆에서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오빠는 꼭 노벨상 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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