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한테 장바구니 물가를 취재하다보면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식료품 값 올라봤자 큰 문제 아니다. 갈치 비싸면 꽁치 먹으면 되고 과일 비싸면 덜 먹으면 되고 배추값 올라봐야 몇천원 차이다. 문제는 과외비다. 써도 써도 불안하고, 이렇게 과외시킬 바에야 학교는 왜 있나 싶고. 정부에서 저축하라 그러는데 과외만 안하게 해주면 한달에 50만원씩 저축하겠다. 쌀값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 바로잡는 것이 물가안정이다』 50만원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주부가 말한 액수이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과외비로 쓴다는 주부들도 수두룩하다.가정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교육문제가 국가경제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본보 16일자 5면 보도에 따르면 미성년자 유학으로 지난해 1∼11월에 우리나라를 빠져나간 외화만 해도 10억1,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우리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외제」교육상품을 선택함으로써 생겨난 「교육무역적자」가 이만큼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외국송금을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미성년자 유학을 사실상 규제하겠다고 밝혔으나 실효를 거둘지 의심스럽다. 상품과 인력이 조건 좋은 곳을 찾아 전세계를 흘러다니는 무역개방의 시대에 질 높은 교육 상품은 마련하지 않고 규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성년기에 다른 문화권의 교육을 받으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은 교육학계의 정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조기유학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고액 과외비보다 유학비용이 싸게 먹힌다』 『촌지 걱정 안해서 좋다』 『대학 들어가는 이들을 위한 들러리만 서느니 내게 맞는 것을 배우겠다』 『주입식 지식이 아닌 창의적 사고력을 배우고 싶다』는 조기유학 지지자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우리 교육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해준다.
우리가 교육무역적자를 볼 때 미국이나 호주 등은 앉아서 그 돈을 벌어들였다. 차라리 정부는 이 기회에 교육이 「굴뚝없는 무공해산업」임을 깨닫고 질 높은 교육상품을 만드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국내교육만 믿고 과외도 촌지도 외면한 채 불안해 하는 많은 서민들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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