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는 감옥에 갇힌 젊음/“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무엇인가 해야한다/왜냐하면 맨손밖에 없으니까”박청호(31)씨의 장편소설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한뜻간)에는 대화를 나타내는 부호-따옴표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리듬감 넘치는 짧은 단문들에 「대화」라 할 만한 말들이 함께 녹아있을 뿐이다.
「강릉에 내렸다. 나는 여자에게 교도소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모른다면서 여자는 그걸 왜 알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거기 갇히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여자는 강릉에 교도소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교도소에 가자고 했다. 여자는 왜 교도소에 가려고 하는지 다시 물었다. 나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소설은 이렇게 주인공 「나」가 후배이자 섹스 파트너인 「김혜수」를 만나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수감된 운동권 출신 「그녀」(이명혜)를 면회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일정한 줄거리를 따라 가지는 않는다.
「나」는 「그」로 바뀌기도 하고 소설 속에 화자가 쓴 소설이, 김혜수의 일기와 이명혜의 독백이 겹쳐진다. 그것들을 점철하는 것은 이념 없는 9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무거운 우울, 바로 그것이다. 소설은 「그」가 환상 속에서 예비군 훈련 도중 자신이 상관을 살해하는 장면이 담긴 몇 커트의 필름을 되돌려 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방인」을 들먹이지 않아도, 기존 권력의 「살해」는 해방의 출구를 찾는 실존적 인물들에 공통된 행위가 아닐까. 제목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은 세계의 감옥성,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내적 고독의 세계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이 지표 없는 현실에 비탄해 하지만은 않는다.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는 맨손의 젊음에 대한 인식이 있다. 작가의 우울은 세계와 그것을 있게 한 역사,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파고 들기보다는 주어지는대로 소비하면서, 화사하고 단순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려는 청춘들과는 다른 청춘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복잡한 장치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작품을 무엇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작가의 문장이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세련된 단문들을 수없이 중첩함으로써 생겨나는 박청호 특유의 문장은 한국문학에서 최초로 이러한 산문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경마장」시리즈의 작가 하일지와 닮아 있다』며 『세계의 사물화와 즉물성에 대응하는 「즉물적 문체」의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힘은 박씨의 글쓰기 이력과도 결부돼 있다.
그는 89년 시로 등단해 시집 「치명적인 것들」에 이어 단편소설집 「단 한 편의 연애소설」을 냈다. 이번 첫 장편에서 그는 『현실을 소설로써 극복하려고 했던 전통적인 작가들의 욕망은 잘못된 일』이라면서 『나는 글 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그저 「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글쓰는 자도 「나」이고 등장인물도 글쓰는 「나」이므로 바로 그 「두개의 나」 사이에 생기는 「그」라는 존재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박씨의 소설은 그가 이렇게 힘겹게나마, 90년대적 자유의 실현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적으로 읽힌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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