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힘’을 누르지 말라/임철순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닫힘’을 누르지 말라/임철순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7.01.18 00:00
0 0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다. 모두가 급하다. 저만 타면 되는지 타자마자 「닫힘」을 누른다. 손으로 작동하면 전기가 많이 소비되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은 안중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내릴 때도 밖으로 다 나가기 전에 「닫힘」으로 손가락이 간다. 그 바람에 몸이 문에 끼여 얼굴을 붉히고 다투는 일까지 생긴다. 급하기는 어린이든 어른이든 한 가지다. 자기만 생각하는 모습은 엘리베이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급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일까.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여유있었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느렸다. 격변하는 시대와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이렇게 조급하고 각박해진 것같다.노동관계법 안기부법 기습통과로 조성된 시국불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한국당은 12월26일 새벽 두 가지 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처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동승을 허용하지 않는 「닫힘」을 눌러버렸다. 그 날로부터 시작된 노동계의 파업은 해를 넘기면서 점점 가열됐다. 일단 17일로 파업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앞으로 임금협상, 단체협상과정에서 얼마든지 재발될 수 있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한 올해는 계속 편안하지 못한 한 해가 될 것같다. 경제가 어렵고 불황이 극심하고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에서 국민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 우리 사회에는 많은 갈등요인이 있었다. 계층간 세대간 남북간 성별간 지역간 갈등에 87년이후 노사간 갈등이 커지면서 새로운 문제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도 올해에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노사문제를 꼽고 있다. 그 노사문제가 지금은 노정갈등의 양상으로 번지면서 훨씬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갈등은 있다. 사회가 다원화하고 일정한 문제에 대한 구성집단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대사회일수록 국민 전체와 사회의 통합을 위해 갈등의 순기능을 부추기고 역기능을 해소·불식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정부는 그나마 미약했던 갈등의 조정기능을 다하지 못한채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스스로 빚어낸 셈이 됐다.

노동관계법의 정비와 개정은 경제회생과 노동문화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처리과정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이 길이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옳다. 그러므로 나를 따라야 한다」는 확신과 독선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반발하고 87년 6월항쟁의 경험이 있는 투쟁세력은 정권타도까지 외치고 있다.

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17일 신한국당의 토론제의를 수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이에 대해 토론대상자가 범법자라는 점에서 다른 토론자가 나설 것을 요구했다. 토론이 제대로 성사될지, 어떤 양상으로 어떻게 전개돼 시국 타개에 도움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부터 경계해야 할 것은 토론제의가 새로운 부작용을 낳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면 안된다는 점이다. 토론은 상대적인 것이며 서로의 견해차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신한국당이든 민주노총이든 「닫힘」을 누르지 말아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